[사이언스 토크] 촛불과 칼의 노래 기사의 사진
광화문 촛불집회
금값이 돼버린 터에 겨우 몇 포기 구매한 배추. 대체 물가는 왜 이리 비싼 거냐며 배추 밑동에 칼을 그어대니 칼자국이 선명하다. 손의 힘을 빌려 4등분으로 갈라진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에도 칼은 김치소로 사용될 온갖 채소를 다듬는 데 절대적 역할을 수행한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랜 연장이자 생존도구인 칼만큼 우리 삶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앞선 세대의 학생들 필통에는 늘 연필깎이용 칼이 들어 있었다. 힘 조절을 하며 조심스레 연필을 깎는 일은 어린 시절 가장 큰 도전이었다. 새 칼이면 베일까 걱정, 녹슨 칼은 잘 안 들어 고생이었다. 동일한 제품이어도 날 선 새것과 무딘 날의 오랜 칼로 연필을 다듬는데 느껴지는 수월함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차이는 칼에 가해지는 힘이 압력의 형태로 연필에 전달되고 그 힘(압력)은 접촉하는 면이 넓을수록 분산되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몰랐음에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똑같은 힘으로 두꺼운 마분지를 뚫을 때 끝이 날카로운 바늘에는 압력이 집중되나 뭉툭한 못의 끝에서는 분산되는 현상에도 적용된다. 그냥 밟으면 눈 속으로 빠지는 발이 스키나 설화를 신으면 빠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날 선 칼이 더 잘 드는 것은 가해지는 힘이 가늘고 예민한 선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무딘 날은 접촉면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압력의 분산을 유발시킴으로써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물리적 과정에도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상은 바뀌었으나 시대적 상황은 어린 시절 연필깎기만큼이나 어려운 ‘사회 다듬기’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한 사회적 칼의 선택과 집중을 묻고 있다. 100만 촛불의 바다를 바라보는 충무공 동상의 뒷모습과 ‘국난’이라는 단어가 극명하게 겹치는 지금, 분명 그 칼은 부정되고 부패한 환부를 도려내어 사회적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칼이어야 한다. 광화문에 울려 퍼진 시민들의 함성은 소설 ‘칼의 노래’ 부제처럼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의 마음을 담은 사회적 외침이 아니었을까.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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