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뉴올리언스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2000년, 친한 친구와 둘이 카리브 해 크루즈 여행을 했다. 카리브 해의 세인트 마틴, 그랜드 케이먼, 발바도스 같은 신비로운 이름의 섬들과 멕시코의 코주멜 섬, 그리고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매력적인 도시 뉴올리언스가 이정표에 들어 있었다. 나는 늘 뉴올리언스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 어느 잡지에선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실제 무대인 뉴올리언스엔 진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이름의 전차가 시내를 돌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뉴올리언스를 향한 열망을 품고 배를 탄 나는 크루즈란 돈을 주고 꿈을 사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우주선을 닮은 배 안에서의 항해는 지루했지만 다음 종착지는 어떨지 늘 설렌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책을 읽다가 맥주 한잔 마시고 눈부신 해를 바라보다가 점심 먹고 또 저녁 먹고 삼시 세끼 만찬도 모자라 밤 열두시가 되면 각양각색의 음식을 가득 차린 미드나이트 뷔페가 차려진다. 한밤중에 접시마다 음식을 가득 덜어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 풍경은 꿈속인 듯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게 삐쩍 말랐던 16년 전에도 나는 자신이 살이 쪘다고 생각했다. 정말 살이 많이 찐 지금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그냥 걱정하지 말고 실컷 먹은들 아무 상관없었는데, 먹는 것만 그러랴. 세상 모든 일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친구는 뜨개질을 하고 나는 책을 읽다가 너무 심심해져서 배 안에서 열리는 싱글파티에 가보니, 65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다 해서 한참 웃다가 그냥 왔다. 그때 마흔이 갓 넘었던 우리는 자신이 나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서양인들은 확실히 싱겁지만 우리보다 훨씬 멋쟁이다. 이 나이에도 한참은 기다려야 싱글파티에 갈 수 있으니 그들은 백세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던 걸까? 부어라 마셔라 아귀처럼 먹어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배고픈 북한 동포들과 에티오피아 난민들과 보스니아 난민들을 떠올렸다. 배에서 내리면 한 백 살은 되어 있을 것처럼 시간은 느리게 갔다.

드디어 배는 꿈에 그리던 뉴올리언스에 정박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미국과 유럽과 아프리카와 다양한 이민자들의 문명이 뒤섞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뉴올리언스에서는 어둑해진 저녁거리를 걸어야 한다. 유럽식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빼곡한 버번 스트리트에 죽 늘어선 카페들 가운데, 그중 근사한 발코니에 올라가 뉴올리언스 맥주 아비타 한 병을 손에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어둑해진 거리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후예들이 트럼펫을 불며 재즈를 연주하던 풍경이 꿈속처럼 아득하게 떠오른다. 흑인 재즈의 발상지 뉴올리언스에서 재즈 음악을 듣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청각의 도시, 동시에 시각적인 매력으로 넘치는 미국이면서도 유럽을 닮은, 그러나 유럽에는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거리 가득 흘러넘친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조금쯤 취한 눈으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듯 보인다. 2월이면 ‘말디그라’라는 가면무도회 축제가 열리는 곳, 나는 왠지 그 낯설게 아름다운 곳이 언젠가 와본 적 있는 듯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가지각색의 가면을 쓴 여자들이 발코니에서 맘에 드는 남자에게 꽃을 던지는 풍경, 그 꽃을 받은 남자와 여자는 그날 밤 사랑에 빠져도 무죄이리라. 그렇게 로맨틱한 상상은 아득히 사라지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요즘 시대엔 모두 가면을 쓰고 퍼레이드 행렬에 끼어 갖가지 구슬과 인형과 목걸이 등을 던져댄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이 던진 목걸이로 몸살을 앓는다.

문득 오래 전에 본 옛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떠오른다.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 칼 말덴의 영상이 떠도는 듯하다. 하긴 살아 있는 그 누구의 마음속인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이 아니랴. 스무 살 시절, 나는 가면무도회라는 제목으로 많은 그림을 그렸었다. 뉴올리언스의 어둑한 거리에서 재즈를 들으며 나는 문득 그 시절의 내 그림들을 떠올렸다. 그때 이미 스무 살 시절로부터 이십 여 년이 훌쩍 흐른 뒤였다. 아쉬운 걸음으로 배 속으로 돌아와 밤 12시에 가득 차린 뷔페 음식을 먹는데, 중국인 웨이터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알려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16년이 흘러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쳐 큰 수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를 TV로 지켜보며 그 아름다운 도시가 폐허가 되는 모습에 안타까웠던 기억도 지나가고, 지금은 놀랄 정도로 복구가 되었다 한다.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크루즈 배 안의 싱글파티에 가기엔 아직도 젊은, 지금 가면 또 아주 다른 느낌이리라.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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