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선덕여왕과 박근혜 대통령 기사의 사진
1400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여왕이 있다. 큰 재난을 당한 백성이나 빈민을 위한 구휼사업에 힘썼던 선덕여왕이다. 기상을 관측하는 첨성대를 건립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여자가 왕이라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백제와 충돌하는 등 크고 작은 전쟁으로 끊임없이 시달렸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노골적으로 선덕여왕을 비판했다. ‘여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선덕여왕이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가 있다. 분황사(芬皇寺)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분황사는 황제의 향기를 담았다는 의미다.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신라는 당나라와 외교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었다. 하루는 당나라 황제가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그림에는 붉은색과 자주색, 흰색의 모란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만 보내온 게 아니었다. 모란의 씨도 같이 보내왔다.

그림을 본 신하들은 황제가 공주를 꽃에 비유했다며 좋아했다. 그러나 덕만공주(선덕여왕)만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꽃 그림에 나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온 모란의 씨를 심어 꽃을 피워봤더니 정말 그 꽃에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선덕여왕은 배우자가 없었다. 당나라 황제는 남편도 없는 여자가 무슨 매력이 있었겠느냐는 뜻에서 모란도를 보낸 것이었다. 요즘 같으면 성희롱을 했다고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덕만공주는 여왕으로 즉위하고 3년이 지난 634년, ‘황제의 향기’라는 이름의 분황사를 지어 ‘황제의 조롱’에 대응했다.

선덕여왕을 매력이 없다고 표현한 것은 당나라 황제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선덕여왕은 워낙 미모가 뛰어나 여왕이 한 번 경주 성내에 나서면 온 백성이 몰려들어 여왕을 보려고 안달하다가 ‘지귀’라는 청년이 상사병에 걸렸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선덕여왕은 대내외적인 어려움 속에도 뚜렷한 외교와 안보관으로 당과의 관계를 대립이 아닌 우호적으로 유지했다. 안정적으로 국력을 키워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2009년 12월 ‘선덕여왕’(MBC)이 방영될 때만 해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덕만공주에 비유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예견한 드라마로도 회자되는 등 화제가 됐다.

2013년 2월, 박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옷매무시 등 외모에 부쩍 신경을 썼다. 선덕여왕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국정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이어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특히 대통령 취임 전이라고 하지만 SBS 방송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인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피부 관리를 받았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정 아름답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피부나 얼굴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주할 때 눈높이 대화로 마음이 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혜와 지성을 겸비한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덕여왕은 향기가 없다고 자신을 조롱한 당나라 황제에게 분황사를 지어 화답했다. 삼국통일의 대망은 김춘추와 김유신에게 맡기고 선정에만 몰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인(人)의 장막을 치고 ‘문고리 3인방’, 비선실세와 국정을 농단하고 ‘통일대박’ 애드벌룬 띄우기에 바빴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지금, 3년 전 선덕여왕의 모습을 연상케 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최)순실’만 남은 꼴이 됐다. 이제 다 내려놓고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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