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방] <80> 성난 민심과 패러디 기사의 사진
‘선덕여왕’ 주인공 미실의 패러디
성난 민심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된다. 그 저항은 활자로, 노래로, 영상으로 다양하게 쏟아진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울분과 조롱을 넘어 비판과 대안의 희망까지 담아낸다.

최순실을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국정농단 은 우리 국민에게 큰 비애감을 안겼다. 국민은 자발적으로 모여 결속했다. 백만 촛불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했다. 평화로운 시위는 축제를 연출했다. 축제의 장에는 시민의 저항의식이 촌철살인처럼 펼쳐졌다. 풍자와 해학은 시민의 목소리로 메아리쳤다. 웃고 있지만 울분을 삭여야만 했다.

며칠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길라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박 대통령이 차움병원을 이용할 때 수년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여주인공인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명대사인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이게 최순입니까? 확siri 해요?’로 바꾼 패러디물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도 도마에 올랐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는 말은 ‘이러려고’ 시리즈로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전파됐다.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안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폭로한다. 그래서 공감은 끝없이 확산된다.

‘문화융성’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인에게 무한 혜택을 제공한 이 정부는 치열하게 예술의 길을 걸었던 문화예술인에게는 ‘블랙리스트’라는 주홍글씨를 박았다. 이율배반적인 정책은 고스란히 비판의 칼날로 되돌아왔다. 수없이 쏟아지는 패러디물은 허한 마음을 위로받고 아픔을 털어내고 싶은 대중의 카타르시스 욕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민중은 자유를 억압당하고 삶이 피폐할 때 풍자와 해학으로 저항했다. 풀은 밟아도 다시 일어선다.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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