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하자 기사의 사진
베이징의 한 외교관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며 울분을 토로한 적이 있다. 중국 쪽 카운터파트를 만날 때면 “당신 나라와 얘기를 하기가 힘들다. 정권이 바뀌면 항상 정책이 바뀌지 않느냐”고 비아냥댄단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도 아래 흔들림 없는 정책을 유지하고, 지도자를 세우면 최소 10년은 보장한다. 중국 정치 체제의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중국식 표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구이미’(閨蜜·친한 여자친구) 최순실 사태까지 터졌으니 그 중국 관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중국 관영 언론은 지난 미국 대선을 보도하며 신이 났다. 유독 중국 눈에 들어온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부각된 막장 선거전이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전문가 기고문을 통해 “역사에는 민주의 승리가 아닌 미국의 200년 선거사상 더럽고 혼란스러운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신화통신은 주요 기업과 부자들에 의해 조작됐고 정치에 평등하게 참여할 보통시민의 권리는 침해당했다는 논리를 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를 보면 중국의 또 다른 속내를 알 수 있다. 중국 당국은 모든 언론에 미국 대선 투표의 생중계나 실시간 보도를 하지 말고 과도한 보도를 피하라고 비밀리에 지시했다. 베이징외국어대 차오무 교수는 “중국 당국이 미 대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선거 관련 표현을 언론에 받아쓰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당국은 중국인들이 서양식 민주주의가 나쁘다고 믿게 만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노르웨이 출신인 스타인 링겐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완벽한 독재’라는 책을 펴냈다. 물론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링겐 교수가 중국 체제를 완벽한 독재로 본 이유는 모든 인민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사상과 생각, 행위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정치 체제다. 중국을 전제정치 체제(專制·Autocracy)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온화’하게 보인다면서 ‘컨트롤러크러시(Controlocracy)’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었다. 우리말로는 ‘관리·통제된 전제’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관리·통제된 전제국가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재가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 목소리에는 감시와 통제로 대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전을 통해 당의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세뇌시킨다. 링겐 교수는 “누구든 독재자라면 중국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꼬집는다.

중국에 사는 외국인도 어느새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최순실 사태를 보는 중국 교민들의 착잡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파리의 교민들이 에펠탑 앞에 모였고,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촛불을 들었지만 중국 교민들은 그럴 수 없다. SNS인 웨이신에서 끼리끼리 울분을 토하고 있다. 베이징대 유학생 98명은 시국선언문을 베이징 특파원에게 메일로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들어보니 시국선언문이 나오기까지도 엄격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쳤다. 중국에서는 모국과 관련해 시위하고 단체행동에 나서도 중국의 안정과 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대학 당국에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19일에도 한국에서는 100만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베이징에서도 역사에 동참해야겠다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가 많다. 비록 국민 스스로 엉망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물러나라고 촛불을 들 수 있는 나라, 국민 스스로 주권자임을 선언할 수 있는 나라. 그 본모습을 중국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괴감은 잠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하자.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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