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2부>]  부지 주민 ‘교육→설득→합의’ 소통의 로드맵 세워야 기사의 사진
경북 경주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내부. 아시아 최초의 동굴처분 방식으로 지하 1.4㎞ 터널 끝에 깊이 130m, 높이 50m, 지름 25m의 콘크리트 처분고를 지었다. 작은 사진은 지난해 8월 경주 방폐장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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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표류해 온 사용후핵연료 처리장(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정부 로드맵대로라면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한 뒤 나오는 폐기물을 2052년 이후부터 영구처분 할 수 있게 된다. 단, 부지 선정부터 건립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서다.

사용후핵연료보다 방사능 수위가 낮은 폐기물을 저장하는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은 운영까지 19년간 ‘아픔의 시간’을 겪었다. 국민일보는 갈등과 반목을 겪었던 방폐장 건립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방폐장 38년 논란, 이제는 결론내자’ 시리즈를 진행해 왔다. 이제 시리즈를 일단락하며 21일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방폐장 건립 필요성’ 모두 공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지난해 6월 활동을 끝내기 직전 19세 이상 성인남녀 4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새로운 저장시설에 대해 응답자 57.3%는 ‘지지한다’고 답했다. ‘중간’이라고 답한 이들은 25.5%였다.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17.2%에 불과했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의 응답자들은 ‘지지한다’는 응답이 61.3%로 4% 포인트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들 역시 방폐장 건립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시설이 들어서는 것에는 극렬히 반대한다. 따라서 방폐장의 안전성과 유치 시 혜택 등에 대해 적극 소통하면서 신중하고 투명한 사업 추진으로 상호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다리가 부러져서 X선 촬영을 하려고 해도 방사능에 노출되는데 그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며 “방사능에 노출되지만 다리가 부러진 것을 치료해야 하는 게 급하니까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폐장 역시 전기를 만드는 원자력발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어떻게든 감수해야 하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자력 분야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라며 “수치에 의존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필요한 걸 알면서도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논란 끝에 마련한 정부 로드맵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지금이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주민들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지 관련 기준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꼽혔다. 문주현 동국대 원자력·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주민의사 확인 기준에 대한 내용이 로드맵에 나와 있지 않아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며 “명확한 기준과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한 뒤 방폐장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짧은 기간 기본조사를 하고 범위를 좁힌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 계획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안전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해야

우리보다 방폐장 건립 논의를 먼저 시작한 스웨덴이나 스위스, 프랑스 등은 주민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다. 반면 국내에서는 ‘방사능 포비아’로 불릴 정도로 부정적인 면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 교수는 “원전과 방폐장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기회가 없었다”며 “이제는 방폐장 안전에 대해 진실을 얘기해도 믿지 않게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안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 방폐장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길 리 없다는 의미다.

투명하지 않은 정보공개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양 처장은 “경주방폐장에도 건립 당시 부지 선정에 대한 전체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불안이 높아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욱 교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방폐장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일반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며 “교육하고 설득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폐장 건립·운영에 있어 국내 기술 수준은 높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문 교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국내 수준은 높은 편”이라며 “다만 심부 지하환경 탐사와 처분부지 적합성 평가 기술은 국제 협력 등을 통해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경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시점에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은 물론이고 독성·부피를 줄이고, 운반·저장·처분의 획기적인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 미래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며 “이 두 가지 모두 투명한 계획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부지 선정은 맞춤형 소통이 해법

방폐장 이슈는 건립 부지를 어느 곳에 선정하는지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방폐장에 대한 거부감을 최대한 낮춘다고 해도 정작 부지로 선정된 지역에서는 극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지역 맞춤형 소통이 해답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 여론 전반에 신뢰를 얻는 문제와 별개로 해당 지역에 대한 ‘핀셋’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지역주민과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며 “다만 정부나 사업자 입장의 홍보논리와 자료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입장을 공감하면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부지선정 지역에 대한 보상이 주민 개개인에게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보상안에 따른 투자는 지역발전에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사실 자체를 지역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며,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범진 교수는 “방폐장이 들어설 지역에 돌아갈 혜택을 정확하게 먼저 제시해야 한다”며 “사용후핵연료를 받아들이는 지자체는 대박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급 인력이 유입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결국 일자리를 유치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것에 대한 정당한 비용 지불 청구서”라며 “이러한 사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사용후핵연료 분야 인력양성 절실

그동안 사용후핵연료 산업·연구에 대한 투자와 인력양성이 소홀했다는 점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정범진 교수는 “원자력 분야는 다른 공공분야와 똑같이 취급되면서 인력 증원이 억제됐다”며 “또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당장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책 순위에서 밀린 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국내 원자력산업은 원자로 건설, 운영 위주의 산업구조로 되어 있고 관심이나 투자도 여기에 우선순위를 뒀다”며 “앞으로 후행 분야의 사업 확대가 불가피해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조 교수는 “학계와 산업계가 그동안 국내 원자력산업 발전을 통해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면서도 “앞으로는 학계·산업계가 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부분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해 절박함과 책임감이 더욱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양 처장은 “학계는 다른 나라 사례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처분 방식이 뭐가 있을지 좀 더 연구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정치 논리는 철저히 배제해야

전문가들은 방폐장 문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키웠던 과거 수많은 정책의 실패 요인을 답습하지 말자는 얘기다.

정동욱 교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단기적인 지역의 여론도 중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적인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전문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역사회 여론을 나서서 이끌어 줄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 교수는 “정치인들은 표심에 휘둘려 선동적 주장과 편 가르기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정부와 지역주민과의 소통 중개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조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정치색깔을 입히지 말아야 한다”며 “정치권은 전문가의 전문성을,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정부의 행정력을, 국민의 진심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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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유나 유성열 기자 spring@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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