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한신갑] 背信 읽기 기사의 사진
주말이면 들르곤 하는 서점에서 책들을 구경하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의 배신’이라는 식의 제목을 단 책들이 서점 여기저기에 꽤 많이 전시돼 있었다. 분야별로 나누어 책을 전시하는 서점의 배치를 고려하면 이런 제목을 단 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말 그런지 더 알아보기 위해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지난 10년간 책 제목에 ‘배신’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100권을 넘는다. 그중 ‘○○의 배신’이라는 식으로 된 제목을 단 책만 추려도 모두 서른여덟 권이다. ‘노오력의 배신’ ‘복지의 배신’ ‘금융의 배신’에서부터 ‘건강의 배신’ ‘채식의 배신’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보면 그동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기대하고, 의지하던 많은 것들이 위로는 이념과 사상, 법과 제도에서부터 아래로는 일상의 소소하고 기본적인 것들까지 모두 우리를 배신하고 있단다. 이 제목들대로라면 앞으로 뭘 믿고 살지가 막막해질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다.

시중에 나오는 책들의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이다. 출판계라는 곳이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다. 출판도 매출을 늘리고 이윤을 내야 하는 사업이고, 출판 시장도 시장이니 만큼 사업과 시장의 작동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요즘처럼 사정이 어려울 때는 그만큼 더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한다. 특히 금년 가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일에 온통 쏠려 있었기 때문에 ‘독서의 계절’인 가을 장사를 망쳤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교과서적으로 생각하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대표하는 제목을 짓는 것이 맞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업과 시장의 논리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과장이 섞이게 되고, 적당한 선에서 충격 효과를 노리게 되고, 때로는 유행하는 어법과 어휘를 따라 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글을 쓴 저자와 책을 내는 출판사가 서로 밀고 당기며 다투기도 하고, 어떤 저자들은 아예 제목 짓기를 출판사에 맡기기도 한다. 그렇겠구나 하고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들이다.

문제는 마지막 부분, 즉 ‘배신(背信)’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정말 희망과 긍정에서부터 국가와 학교, 그리고 식탁, 다이어트, 한식에 이르기까지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모두 배신에 감염되어 우리를 등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배신이라는 말이 요사이 더 넓게, 더 흔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일까.

배신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이다. 그동안의 믿음이 맹목적이거나 지나쳐서, 또는 의리라는 말에 기대하는 것이 비뚤어진 것이거나 너무 커서, 그것에 대한 주의와 경고의 의미로 그 말을 제목에 쓰는 것이라면 좋다. 마치 약의 설명서에 들어간 부작용에 대한 주의나 지켜야 할 용법과 용량 설명과 같은 용도로 붙이는 것이라면 오히려 더 하자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질 유행이라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저버리고, 동지를 배반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인다는 원래의 말뜻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면, 그리고 그 유행이 서점에 나온 책들의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되거나 확산되고 있다면 이 유행은 걱정해야 할 일이고, 유심히 살펴봐야 할 일이다.

혹시 이 유행 때문에, 또는 이 유행이 번지기 전부터 우리 사회가 이미 배신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이런 말들은 자주 쓰일수록 일종의 감가상각(減價償却)을 겪는다. 그 말이 갖는 말뜻은 흐려지고, 그 말이 지칭하는 현상에 대한 이질감은 줄어들고, 그 말이 주는 충격은 무뎌진다. 다들 한번쯤은 겪어봤겠지만 무리지어 버스에 오른 중학생들이 나누는 대화에 수없이 등장하는 듣기 험한 말이 내 귀에는 충격으로 들리는데, 정작 말하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이유는 그 말이 그들에게는 자주 쓰는 일상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일상화를 통한 감가상각이고, 말뜻의 인플레이션이다. 익숙해지는 만큼 쉽게 쓰게 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배신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지 않는, 그 말에 익숙해진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배신이란 말이 마치 화폐개혁 후의 구권 지폐처럼 거리를 굴러다니는 그런 사회, 함께 모여 살 수 있도록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서의 신뢰가 모두 끊어진 그런 사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한신갑(서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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