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문재인과 김기춘 기사의 사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국회의 탄핵소추위원은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탄핵법정에서 탄핵소추위원은 검사 역할을 하게 된다. 소추위원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맡게 돼 있다.

김 전 실장은 탄핵심판 도중 직접 나서서 “자숙해야 할 피청구인(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사람들을 청와대로 불러 선거에 대해 언급한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3월 12일 대한민국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낸 것도 그였다. 그의 적극 공세에도 5월 14일 헌재는 탄핵안 ‘기각’을 결정했다. 노 대통령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은 인정했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의 변호인단 간사는 문재인(63)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열네 살 차이인 김 전 실장과 문 전 대표는 동향(경남 거제)에다 경남고 선후배 사이다.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엇갈렸다. 김 전 실장은 탄핵 사태 후 법제사법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끝으로 한동안 무대 뒤로 자취를 감췄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고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앉게 된다. 둘의 희비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또 다시 갈린다. 7인회 멤버로 막후에서 활동한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기춘 대원군’으로 불린 그의 첫 작품은 검찰 길들이기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눈 밖에 난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의혹으로 끌어내리고 검찰 내 주요 보직을 ‘김기춘 라인’으로 채웠다. 반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검은 커넥션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대통령 탄핵까지 나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탄핵에 소극적이던 문 전 대표는 20일 야권 대선주자들과의 모임에 이어 21일 대학생과의 시국대화에서도 “정치권이 여러 이유로 박 대통령 탄핵을 주저했으나 검찰의 발표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탄핵사유가 넘쳐난다.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두 전직 비서실장의 공수가 12년 전과 완전히 바뀐 셈이다. 이번에는 고향 선후배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자못 관심이다. 글=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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