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하현] ‘비자발적 기부금 금지법’ 기사의 사진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 하야 시위가 4주째 이어지고 있으며 관련된 의혹과 비리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 경제에는 암울할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소식에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판에 ‘수신제가(修身齊家)’마저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마저 덩달아 울상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삼성, 현대 등 53개 대기업이 약 774억원의 자금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며 화살이 재계로 향하고 있다. 기업들은 불이익을 볼까 염려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낸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기업이 아무런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외압에 의해 강제로 기부했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고서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처럼 자발적 기부라는 외피를 두른 정부의 기업자금 모금은 현 정권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미소금융, 동반성장기금 모금 등 기업 옥죄기는 계속되어 왔다. 박근혜정권에서도 미르·K스포츠재단 외에 청년희망펀드, 창조경제혁신센터, 평창 동계올림픽 등의 정부주도 사업에 동원한 기업 자금이 무려 2164억원에 이른다.

이런 기업의 자금은 준조세 영역에 속한다. 준조세란 기업이 조세 이외에 비자발적으로 지게 되는 금전적 부담을 뜻하며, 크게 ①기업부담 사회보험료 ②부담금관리기본법에 열거된 각종 부담금 ③비자발적인 기부금 및 성금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기업이 억지로 낸 기부금은 ③에 해당한다. 이는 이미 제도화되어 있는 ① ②와 달리 법적인 근거 없이 정부에 의한 강제성을 띤다는 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기업이 반대급부를 바라고 냈든 정치권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냈든 이 같은 관행은 정경유착이라는 후진적 행태를 낳는다. 준조세는 정경유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약화시킨다. 정부 예산이 부족할 때 기업의 지갑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②의 각종 부담금은 한 곳에서 통합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의 개별법에 따라 징수해 사용하므로 무리하거나 중복 항목이 많아 문제가 있다. 따라서 부담금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 불합리하거나 중복되는 항목을 축소해야 한다.

시급한 문제는 ③의 비자발적인 기부금이다. 정부제공 자료도 미비하여 정확한 집계가 어려워 모금 내역과 사용처를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경유착 관행은 정부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비자발적 기부금 금지법’을 법제화해야 한다. 기금 조성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헌법 59조의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구체적인 법률 조항을 통해 세금 형태로 징수해야 하며 사업 목적과 기금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비자발적 기부금을 강요하는 행동기구가 대통령 비서실이었다. 앞으로 비서실을 전면 축소·개편해야 한다. 현재 정부조직법에는 비서실의 기능과 하부조직에 관해서는 상세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기능과 조직을 법에 의해 규정하고,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비대해진 비서실의 기능을 축소하고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이 각 부서 위에 강자로 군림하기보다는 부서 간 수평적인 대화 및 협조가 가능하도록 이끄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비서실이 돼야 한다. 민주국가에 전무후무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금번과 같은 일이 전화위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광화문으로 뛰쳐나온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세상을 물려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조하현(연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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