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제대로 곪아가고 있다 기사의 사진
돌아보니 이 지면에 썼던 많은 글이 대통령을 향한 거였다. 이것도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폐해일 테다. 무엇이든 대통령이 결정해야 이뤄지는 제왕적 체제에서 주문과 제언은 결국 대통령 들으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듣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민심을 거부하고 맞서는 대통령에게 할애하기 아까운 지면이다. 박 대통령을 향해 썼다면 “물러나시오” 했을 텐데, 그러지 않기로 한 까닭에 이 글은 자연히 “끌어내리자”가 됐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바뀐다. 한 세대가 퇴장하고 다음 세대가 무대에 섰다. 1987년 이후 우리는 너무 긴 세월을 안정 속에 보냈다. 혁명, 항쟁, 저항 같은 단어가 뒤로 물러선 사이에 안정은 점차 정체로 변질됐다.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러다 도리어 쇠락하겠다는 불안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울고 싶었는데, 뺨을 맞았다. 그것도 대통령에게. 30년간 안정을 지탱해준 87년 체제, 그 핵심인 민주와 법치를 박 대통령이 농단했다. 민주화를 이룬 87년의 국민적 응집력은 지금의 한국을 가능케 한 토대인데, 여기까지인 듯하다. 뺨도 맞았으니 이제 한바탕 울면 된다.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30년을 시작할 기회가 왔다.

우리가 개헌을 얘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체를 극복하고 87년 체제를 넘어 도약할 새로운 기반을 만들자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선주자마다, 정치세력마다 모두가 개헌을 말했지만 아무도 가능하리라 확신하지 못했다. 합의를 이뤄낼 변혁의 힘을 찾지 못해 말만 하고 있었다. 죽도 밥도 안 될 터였는데 지금 국민은 이게 나라냐,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설득해내지 못한 사회적 합의의 단초가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에 의해 마련됐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계단식 성장이라 불러도 좋다. 4·19혁명과 5·16쿠데타, 유신 저항과 12·12사태, 87년 6월항쟁. 기존 체제가 고인 물이 됐을 때 민주적이든 비민주적이든 그것을 뒤엎는 사건이 있었고, 이는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한바탕 난리를 겪어야 도약할 수 있는 게 숙명이라면 서글프지만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지휘해온 검찰권을 부정하고, 담화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말을 뒤집었다. 상식을 버린 것이다. 시대를 바꾸는 변화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았을 때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이 정권은 제대로 곪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과정과 끌어내린 이후 국가 설계가 변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탄핵은 그 절차가 안고 있는 불확실성 탓에 피하고 싶었지만, 박 대통령이 자초한 이상 가야 할 길이 됐다. 탄핵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가장 경계할 것은 보수·진보의 낡은 진영논리가 끼어드는 경우일 테다. 보수 일각에선 “그렇다고 문재인에게 (권력을) 줄 거냐”는 주장이 벌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진보 일각에선 민주노총 총파업 예고처럼 이 국면을 이용하려는, 그래서 진영논리에 빌미를 줄 수 있는 움직임이 보인다. 6개월은 걸릴 탄핵 과정이 오염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봐야 한다.

탄핵 이후를 놓고 정치권은 아마 많은 갈등을 겪을 것이다. 새로운 국가체계,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칫 배가 산으로 갈지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국민을 어떤 정치인이 무서워하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느냐에 달렸다. 100만 촛불의 질서정연함은 이 기회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줬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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