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승복의 추억 기사의 사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호텔 홀에 섰다. 슬픔을 상징하는 보라색 상의 차림이었다. 전국 득표수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를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 뒤져 패배한 뒤였다. 클린턴은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13분 동안 담담하게 승복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아직 깨지 못했다”며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깨뜨릴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한 앨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의 승복 연설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고어는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는 많은 논쟁이 오가지만 일단 결과가 정해지면 승자나 패자나 받아들이는 것이 화합의 정신”이라고 했다. 플로리다주 재검표를 앞두고 동요하던 국민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명연설이었다. 패자의 승복 연설은 1860년 스티븐 더글러스 민주당 후보가 에이브러햄 링컨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를 인정한 이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승복의 추억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선거인단 투표에선 이기고도 여론조사에 뒤져 후보 자리를 내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2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측근으로부터 경선 패배 메모를 전달받고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승복 연설을 통해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관중석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아름다운 승복은 5년 뒤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

주말마다 수많은 이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면서다. 95%의 민심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박 대통령은 9년 전 아름다웠던 승복의 추억을 떠올렸으면 한다.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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