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아직도 꿈꾸는 대통령 기사의 사진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명예로운 퇴진을 조언하는 주변인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대통령의 거짓말이 반복되다보니 진실을 알 수 없다.

“내 앞에선 조용하더니 국민들이 싫어할 일은 다하고 다녔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전 참모들이 최순실씨의 비행 내역을 보고했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했단다.

이 말들을 듣고 보니 하야를 외치는 100만 촛불민심 앞에서 버티는 대통령의 오기가 이해가 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남다른 뇌구조를 짚어봐야 한다.

대통령은 임기 3년9개월 동안 전지적 작가이자 방관자였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도 제 시간에 구조를 못한 자신의 책임과 무능을 처음에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선장과 선원들 탓만 했다.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다 최씨 눈에 거슬린 문체부 국·과장에 대해선 ‘참 나쁜 사람들’이라며 훈육했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뒤 대국민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남의 말 하듯 했다.

검찰은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사상누각’이라고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선의’에서 한 일인데 왜들 그러는지. 내 욕심을 채우자는 것도 아니고 나라발전을 위해 기업들에 돈 좀 내라고 한 게 문제 되나. 최씨의 딸 정유라의 친구 아버지가 하는 사업체가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 KT에 최씨와 차은택씨 지인을 앉히도록 한 일, 그 정도쯤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인데.

연설문이나 정부 기밀문서 등을 유출한 것, “최 선생님 컨펌을 받아”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인데 뭐 그리 대수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줌마의 순진한 생각이다.

박 대통령의 사고가 영애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1970년대 개발연대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삼성, 현대 등 창업 1세대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 일념으로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웠듯이 문화·스포츠 융성을 통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기업에 돈을 거뒀고. 하지만 명백히 해서는 안 되는 범죄행위였다. 그걸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최순실이 국정을 휘젓고 다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도 대통령인데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도 비겁하다.

“내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민심의 쓰나미에 정부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아직도 헛된 꿈을 꾸고 있다. 버티면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년엔 성장률 2%대 추락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다.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생겼다. 이대로 1년을 보낼 수는 없다.

대통령이 내려오지 않겠다면 각료들과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 사표를 내는 건 어떤가. 경총 회장도 알고 있는 일을 이들이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한 것이다. 만약 알고서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했다면 공복(公僕)으로서 할 일을 방기한 것이다. 공복이라면 대통령 한 사람을 보좌할 게 아니라 민(民)을 보고 일해야 한다.

이미 박근혜정부는 끝났다.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거나 “여성 대통령에게 결례라 생각해서 (세월호 7시간 미용시술 의혹을) 못 물어봤다” 식의 헛소리로 면피를 할 게 아니다. 차라리 레이저 눈빛이 무서웠다고 하는 게 솔직해 보인다. 진정 나라를 걱정한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손을 잡고 함께 내려오라.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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