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주화] 햄버거를 먹는 시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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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한 손에 햄버거를 쥐고, 빵을 한입 베어 먹으며 걷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말 독일에 갔을 때다. 사람들이 바빠 보이는 건 아니었다. 햄버거를 씹으며 가로수를 보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했다. 도리어 걸으며 먹는 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거리에서만이 아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본 장면이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뭔가 먹고 있었다. 종이 껍질 안으로 빵과 패티(patty)가 보였다. 햄버거였다. 그녀 앞으로 버스가 간간이 섰고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이 여성의 평화로운 표정과 여유 있는 동작은 흡사 근사한 식당에 앉아 안심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에 몇몇 독일인이 있었지만 그녀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 온 내가 유일한 방해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가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햄버거를 손으로 들고 먹지 않는다.”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 대통령은 보좌관이 가져다준 포크와 나이프를 받고서야 햄버거를 먹었다고 한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이란 시집을 낸 장정일은 “두 손으로 들고 먹지 않는 햄버거,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것은 절대 햄버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햄버거의 근대적 기원은 독일이다. 17세기 독일 최대 항구도시 함부르크. 부두에서 물건을 나르는 이들은 식당에 갈 돈도,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들은 질 낮은 고기를 갈았고, 이 고기를 소금으로 간해 구웠다. 이걸 점심 도시락으로 싸다녔다. 19세기 초반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고기가 뉴욕에 소개됐다. 함부르크 스테이크(hamburg steak)로 불렸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함박스테이크’다. 이 스테이크를 빵 사이에 넣어 간편하게 먹는 게 오늘날의 햄버거다.

현지인에게 왜 독일인들은 거리에서 음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지 물었다. 그는 한참 고민한 뒤 이렇게 말했다. “68혁명 이후 사회 전반에 탈권위적이고 실용적인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그런 것 같다. 아직도 독일 상류층은 식탁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한다.”

이땐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독일에 체류할 때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를 ‘공주(公主)’로 여긴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공주는 본래 왕의 딸을 가리킨다. 봉건 시대의 직위다. 요즘 와선 외모를 예쁘게 가꾸고 특별한 대접을 받기 원하는 여자를 부르는 은어로 애용된다. 최씨는 아마 후자를 더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제 보니 공주란 말은 현 대통령의 정체성을 포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누군가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다주기 전까지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그녀가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영위해왔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챙겨야할 사소한 것조차 타인에게 의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국정을 뒷전에 두진 않았겠지만 미용시술에 시간과 돈을 쓴 정황을 보면 외모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은 것 같다. 대통령직을 가산(家産)으로 느끼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그 후광에 적잖게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

햄버거의 본향인 독일은 공직자의 청렴 기준이 매우 높다.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은 2012년 시중 이율보다 1% 포인트 낮은 이율로 친구에게 돈 빌렸다는 이유로 특혜 의혹 시비에 휘말렸고 결국 사임했다. 그가 처음에 사임을 거부하자 독일 언론은 다른 특혜 의혹을 연달아 보도했다. 이런 것들이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받은 5만원 상당의 장난감, 친구의 돈으로 호텔 객실 업그레이드를 한 것, 아내가 0.5% 포인트 낮은 자동차 할부이율을 적용받은 것….’ 우리나라에서라면 ‘특혜인가’라고 되물을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다.

박 대통령은 대기업들에 직접 수백억원의 후원을 요구했고, 국가 기밀자료를 최씨에게 광범위하게 유출했다. 자신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된 것이라고 의식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세월호 참사 뒤 그녀가 가슴에 눈물 가득한 아비의 하소연에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는 관료의 언어로 차갑게 답하던 게 떠오른다. 그녀에게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힘겨움과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높은 기대였을까. 지금의 혼란은 햄버거도 먹을 줄 모르는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우리에게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엔 꼭 햄버거를 두 손으로 먹는 대통령을 뽑자.

강주화 종교부 차장 rul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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