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저항의 빛 축복·소망의 빛 되라

촛불 - 대림절에 생각한다

연대·저항의 빛 축복·소망의 빛 되라 기사의 사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대림절을 앞두고 있다. 빛으로 오신 예수를 따라 의의 촛불을 들고,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크리스천들의 의무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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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오신단다/ 길 닦아 예비하자/ 내 집에 오시는 님을/ 날 보러 오시는 님을/ 그저 어찌 맞느냐.”

기독사상가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시 ‘님이 오신다’의 일부다. 시에서 화자(話者)는 님을 기다린다면서 늦잠을 잔다. 뒤늦게 눈을 뜨고는 방안이 허투루 늘어놓은 것들로 어지러운 것을 보고 당황한다. 쓸고 닦고 고치며 물을 뿌려 묵은 먼지를 닦으려 하지만 마음만 바쁘다.

‘님’을 기다리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27일은 대림절 첫째 주일로 교회력에 따르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다. 누가복음 2장 25∼38절은 올바른 기다림의 예를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소개한다.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볼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시므온은 그리스도 만나기를 염원했고, 예배 드리러 온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만난다. 시므온은 예수가 만민의 구원자이자 빛임을 알렸다.

결혼 후 7년 만에 과부가 된 안나는 84년을 홀로 지내며 성전을 떠나지 않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에 시므온과 동일하게 아기 예수를 만났다. 성경은 경건하고 의로운 심령으로 재림을 잘 예비하고 있는지를 현 세대에 묻는다.

성탄절 전까지 4주간의 대림절 기간에 교회는 주일마다 각각 다른 의미가 담긴 촛불을 켠다. 첫째 주일에 켜는 촛불은 ‘기다림과 소망’, 둘째 주일은 ‘회개’, 셋째 주일은 ‘사랑과 나눔’, 넷째 주일은 ‘만남과 화해’를 뜻한다.

장로회신학대 김경진(예배학) 교수는 “대림절의 촛불은 하나의 상징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는 도구”라며 “예수를 기억하고 또 그의 오심을 감사하는 의미로 지키고 있지만, 예수가 언젠가 우리에게 심판주로 오실 것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의 탄생은 당시 성전이나 회당 등이 아닌,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난 곳에서 이뤄졌다”며 “이후 예수는 교회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웃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셨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려야하는지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를 밝히는 촛불의 빛이 교회 밖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의미다.

교회 밖 세상의 촛불은 20세기에 사회적 의례성을 재발견하면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옥성삼 크로스미디어랩 원장은 “1968년 미국의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 때 촛불은 침묵 비폭력 평화 생명을 상징했고 1981년 11월 당시 공산주의 동독의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촛불기도회는 독일통일의 초석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선·미선 학생 추모 촛불집회에서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전개되고 있는 지금의 촛불집회까지 추모와 저항, 사회적 연대와 민주주의 실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장신대 정병준(교회사) 교수는 “국민들의 분노는 한계점을 넘어서 지금 촛불 이상의 불길로 번져가고 있다”며 “낙담한 국민들이 광장을 찾아 외치는 소리에 국가의 위정자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속에서 크리스천들의 촛불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옥 원장은 “불의에 맞선 백성의 촛불이 행동하는 양심을 나타낸다면, 성도들의 손에 쥐어진 촛불은 진리의 추구이자 창조질서의 회복을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짓과 위선의 거리를 가로질러 염려 경쟁 탐욕으로 중독된 나의 일상을 개혁하고 멈춤, 쉼, 코이노니아를 지키고 현재화하는 촛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의 촛불을 들고,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크리스천들의 의무라는 것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도 말하고 있다. 그는 ‘고백록’에서 “세대마다 주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거룩한 자들이 정의에 순종함으로 더욱 고귀하고 탁월한 방식으로 도덕적 질서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짓과 위선, 허위의식 등이 가득 찬 현실을 두고 체념하는 것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 오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호남신대 강성열(구약학) 교수는 “예수는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대 사회,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던 썩어빠진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에 몰두하셨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며 예수는 스스로가 새 시대의 파수꾼이 되셨다”고 말했다. 그는 “모름지기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수 없다”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때일수록 하나님의 새로운 희망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마땅한 신앙 생리”라고 강조했다.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겐 짐을 대신 지어주시는 예수님을 가르쳐야 한다”고 권면한 찰스 스펄전(1834∼1892) 목사의 설교와 일맥상통한다.

강 교수는 “크리스천들은 스스로가 속한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가져야 한다”며 “대림절을 맞아 썩어져가는 구습이 깨끗이 쓸려나가고 하나님의 새 역사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일구는 심정으로 촛불을 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 ‘님이 오신다’의 후반부를 보면 화자가 허둥대는 사이에 님은 도착한다. 님은 당황하는 그를 다독이며 말한다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 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님으로 인해 어두웠던 방은 저절로 밝아진다.

글=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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