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기독교는 원래 보수? 기사의 사진
국민일보 종교국에는 참 다양한 전화가 걸려온다. 기사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전화가 제일 많고 취재를 요청하는 전화가 그 다음이다. 이단문제 등으로 신앙상담을 하고 싶다거나 114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교계 단체나 교회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경우도 꽤 있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보도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의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국민일보가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글을 싣고 진보성향 매체와 논조를 같이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많다. 박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을 이야기하면 진보좌파이고 반대하면 애국보수인데,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국민일보는 당연히 애국보수여야 한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 중에도 ‘기독교는 원래 보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복음의 본질을 헤아려보고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명백한 오류다.

8·15 광복 후 한국교회가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진보좌파에도 있다. 당시 진보세력은 극도로 이데올로기화돼 있었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지배계급과 제국주의를 대변한다고 도식적으로 이해하고 공격했다. 이를 겪은 다수 기독교인들이 반공을 기치로 보수우경화됐다. 북한정권에서 탄압받은 기독인들이 월남하고 6·25전쟁까지 터지면서 이런 성향은 심화됐다. ‘반공=보수’로 여겨지던 시절, 한국교회는 당연히 보수라는 인식이 더욱 확대됐다. 1970, 80년대 상당수 한국교회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통일과 평화운동도 전개했지만 ‘기독교는 보수’라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한말 선교사들은 신분제를 타파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외치며 이를 실천했다. 기득권 세력인 양반들의 눈으로 봤을 때 진보적이다 못해 급진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기독인이 축첩제 등 악습을 철폐하기 위해 계몽운동에 나섰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기독인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간주돼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방인도 노예도 여성도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하나라는 기독교의 외침은 유대사회에 심각한 도전이었다. 기독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로마제국의 황제에게도 목숨을 걸고 맞섰다. 유대 기득권층과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체제 위협 세력으로 간주하고 탄압했다. 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오랜 중세시대를 끝내고 근대로 가는 문을 열었던 루터와 칼뱅도 당시 어떤 세력보다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때론 보수, 때론 진보로 비칠 뿐, 어느 하나의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이념이 아니라 이를 초월한 복음이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독교에 보수나 진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 하는 이들이 있다면 세상적 이해관계를 위해 기독교를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신실한 기독교인들도 현 정국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주장과 하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모두 복음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참기독인이라면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 어느 의견이 더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복음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이념적 잣대를 앞세우면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이 훼손될 수 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은혜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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