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다윗들의 반격 기사의 사진
끈을 꼬아서 양쪽 끝은 한손에 그러쥐기 쉽게 하고, 가운데는 널찍하게 만들어 돌을 넣기 좋도록 한 것을 ‘투석 끈’ 혹은 ‘물매(sling)’라고 부른다. 고대에 물매로 무장한 투석부대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빠른 속도로 물매를 돌려 돌을 쏘아내면 초속 35m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다고 한다.

어떤 물체가 부딪혀 생기는 충격은 날아가는 속도와 돌의 무게에 비례한다. 얼마나 무거운 돌을 어느 정도 빠른 속도로 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근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가소로웠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었고, 키가 무려 2m를 넘는 거구 골리앗에게 아직 솜털이 보송한 목동 다윗은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았다. 둘은 대략 80m 정도 거리를 두고 섰으니 물맷돌이 초속 35m로 날아갔다면 골리앗의 몸에 닿기까지 2.9초 걸린다. 어린 나이임을 감안해 초속 20m로 잡으면 4초라는 여유가 있다. 날아오는 궤적을 보면서 피할 시간이 충분했을 것이다. 여기에다 골리앗은 청동갑옷과 투구로 온몸을 감쌌다.

월등한 무력을 보유한 골리앗의 ‘육체 권력’은 전쟁터에서 위압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절대 권력에 맞서지 못했다. 오로지 다윗만 빼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오만 혹은 자만은 자멸을 부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위용을 뽐내는 거대한 권력일지라도 작은 권력의 손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이제스 나임은 저서 ‘권력의 종말’에서 “지난 30년 동안 권력 주위에 쳐진 장벽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약해졌다. 이제 아주 쉽게 침식되고 매몰되고 구멍이 뚫린다”고 했다. 나임의 통찰처럼 모든 분야에서 골리앗 같은 절대 권력은 쇠퇴하고, 미세하게 나눠진다. 거대함을 압도하는 다윗들, 미시권력이 등장하고 있다.

은행은 민첩한 헤지 펀드들에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을 빼앗기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이 전통기업을 무너뜨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고, 구글이 그렇다.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신생 벤처로 시작해 권좌에 오르고 산업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도 자신과 같은 신생 벤처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거대한 공장을 두고 대량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던 시대도 차츰 저물어 간다. 3D 프린터, 디지털기기, 온라인 네트워크로 무장한 팹랩(제작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은 1인 생산·소비 혹은 소량 생산·소비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경제권력뿐 아니다. 정치권력도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어느 때보다 뉴스를 많이 소비하고, 어느 때보다 정치 참여가 활발한 대중은 권력 분점, 권력 나누기를 원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난하는 동시에 향유한다. 양복 차려입고 점잔 빼는 소수만 쥐고 있던 정치권력은 ‘광장의 함성’ ‘사이버공간의 민중’에게로 빠르게 옮겨 가고 있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자궁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꼴을 갖춰 왔다. 지금 대한민국의 광장에 모인 다윗들은 물맷돌 대신 스마트폰과 촛불로 무장했다. 분노와 좌절, 희망, 수많은 풍자는 온라인과 SNS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빛의 속도로 넘나든다. 다윗들이 광장에 모이고, 절대권력 골리앗을 포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서너 주밖에 안 된다.

낡은 권력이 물러나면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광장의 교훈, 다윗의 교훈이 퇴색해선 안 된다. 오만과 자만으로 가득한 권력은 수많은 다윗들의 손에 결국 무너진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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