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는 누구인가 기사의 사진
어려운 때일수록 고전의 가르침은 빛이 난다. 막스 베버는 말한다. 정치 지도자의 명예는 공적 책임에서 나온다. 광장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범 사례로 기록될 ‘촛불 항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화살도 그 과녁은 책임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허투루 쓴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책임을 회피할 방법은 없다. 대통령은 이제 사과가 아니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방법은 그뿐이다.

책임은 대통령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이 정권 이후를 생각하는 모든 정치지도자들에게 강조될 덕목이다. 지금처럼 사방에서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올 때 ‘정치인의 책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책임 있는 정치 리더와 무책임한 정치 리더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베버는 이미 여기에 답을 주었다. ‘시대의 소명에 충실한가, 권력에 대한 야심만 그득한가?’ ‘균형적 판단에 의거해 대안 모색에 열정을 바치는가, 아니면 선동에 열정을 바치는가?’

이 기준에서 볼 때 현재 책임 있는 정치 리더가 얼마나 있을까? 알량한 계파 이익을 위해 연일 괴변을 쏟아내는 여당 대표나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야당 대표는 물론 책임과 거리가 멀다. 마음은 콩밭에 있는 일부 대권주자들도 의문부호를 달게 한다. 빨리 정권을 퇴진시키고 대선을 치러 권력을 잡자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듯하다. 튀는 언사로 한 주자의 지지율이 오르자 유력 주자들이 이에 뒤질세라 데마고그로 변신한다.

지금 이럴 때인가? 당장 눈앞에는 경제위기의 일파가 시작되고 있다. 두 달 동안 외국돈이 4조원 이상 빠져나가고, 시중금리는 오르고,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했다. 수출 생산 소비 모든 지표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경제를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모두 내년이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경제 위기는 선제적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97년 위기나 2008년 위기처럼 갑자기 당하고 부랴부랴 대처하게 되어 있다. 선제적 대응은 모든 경제 주체들의 지혜를 모아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정부가 힘 있게 집행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식물 상태에 빠진 정부에 그런 기능을 주문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럼에도 탄핵안 통과에만 매달려 탄핵 이후의 국정 관리를 이미 기력이 없는 현 총리 체제에 맡긴다니 참 한가하고 무책임하다. 탄핵 재판이 끝날 때까지 3개월이 걸릴지 6개월이 걸릴지 모르고 대선까지 치르려면 일러야 내년 하반기에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그 기간이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내각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탄핵 의결 전에 책임총리를 추천하든지, 정 안 되면 김병준 총리라도 인준하든지 해서 새로운 대오를 갖춰 임하게 해야 한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경제부총리라도 바꾸고 각계가 참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구성해 선제적 대응에 들어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래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이지만, 그것을 막을 방안을 내놓을 책임은 국회에 있는 것이다.

책임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체제 개혁은 민중항쟁이 주도했다. 4·19혁명이 근대화의 계기였고, 광주항쟁과 6월 항쟁이 87년 체제를 만들어냈다. 촛불을 승화시키는 길은 ‘정권 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실패’와 ‘인물의 실패’는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87년 체제의 적폐를 씻어내고, 시대 흐름에 맞는 국가의 틀을 갖추어야 촛불 항거의 역사적 소임은 완성될 것이다. 탄핵이 의결되고 나면 국회는 이를 다루어야 한다. 개헌 논의를 우회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개헌 논의는 우리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성찰이자,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탐구하고 숙의하는 일이다.

이를 왜 봉쇄하려 하는가? ‘블랙홀’ 운운하면서 개헌 논의를 틀어막았던 현 정부나 정권교체가 우선이고 개헌은 그 뒤에나 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사고의 중심에는 똑같은 욕망이 자리한다. 권력을 지키거나 차지하겠다는 욕망이다. 대권 밥상 차렸는데 밥상 차지 말라는 것이다.

촛불 민심이 과연 대한민국호의 선장만 바꾸자는 것일까? 아니다. 그 바탕엔 반복되는 엔진과 선체의 고장을 바로잡고, 배를 업그레이드해서 운항하라는 시대의 명령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배를 제대로 고치는 데는 열정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선장 자리만 차지하기 위해 열정에 빠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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