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계엄령 기사의 사진
계엄령(戒嚴令), 반민주의 상징이다. 섬뜩하다. 눈이 있되 볼 수 없었고, 입이 있되 말을 못했다. 양심의 생명줄이 끊겼고, 진실은 숨을 쉬지 못했다.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겼다. 계엄령 트라우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데 그때마다 계엄령이 있었다. 5·16군사정변, 6·3사태, 12·12사태 때 그랬다. 계엄령은 민주주의 역사와도 관통한다. 이승만 정권의 조종을 울린 4·19혁명,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예고한 부마민주항쟁과 종말을 알린 10·26사태, 5·18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때도 계엄령이 발동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계엄령은 정권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압박이 강하면 반발도 커진다는 원리가 물리학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정치에서도 이 원리는 확인됐다. 정통성이 허약했던 정권의 반민주적 행위와 탄압이 되레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다. 민주주의를 중단시킨 계엄령이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된 것. 피를 부른 계엄령이 민주화를 관통한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현대사가 이를 증명한다.

영화 ‘계엄령’(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에 얽힌 이야기도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프랑스 대배우 이브 몽탕이 주연한 1973년 정치영화인데, 서울 상영은 20년이 지난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서야 이뤄졌다. 우루과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익은 집권세력으로, 좌익은 혁명군으로 묘사한 작품을 군사정부가 상영을 허용할 리 없었다. 요즘도 ‘우파영화’니 ‘좌파영화’니 논란이 끊임없다. 이처럼 영화는 정치와 맞닿아 있다. 때론 ‘수단’으로, 때론 ‘저항’으로.

얼마 전 계엄령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가슴을 졸였다. 그런데 진원지가 추미애 민주당 대표란다. 날개 없는 말은 순식간에 퍼졌다. 추 대표 발언 이후 경기북부 지역의 군부대 이동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군사정부도 아닌데 설마…”라면서도 “제1 야당 대표 발언인데 근거 없이 함부로 말했을까. 혹 군사쿠데타?”라고 내심 걱정했다. 진위를 확인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 무식하게”라는 핀잔만 들었다. 이후 근거 없는 루머로 결론 났다. ‘실수’인지 ‘의도’인지 모르나 황당할 뿐이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혀에서 나간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추 대표가 모를 리 없을 터인데…. 그나저나 계엄령 때문에 무식한 기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줄은 진짜 몰랐다. 시쳇말로 대략난감이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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