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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기수] 청와대 의무실 미스터리

미용 수술용 마취제 대량 구입 납득 안돼… 대형 약국처럼 보양 주사제도 다량 구매

[내일을 열며-이기수] 청와대 의무실 미스터리 기사의 사진
‘하야하그라’ ‘근혜님은 청와대 비우그라’…. 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시위장에 등장한 팻말이다. 청와대가 국민 혈세로 상당량의 발기부전 치료제를 사들인 것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버무렸다. 청와대는 고산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비아그라와 팔팔정 80만원어치를 구매했다고 해명했다. 약간의 효과를 인정한다 해도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 수준으로 봐줄 수 있다. 청와대 직원들 중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에 발기부전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리도카인’ 180개다. 리도카인은 피부미용 시술을 받을 때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국소마취제다. 흔히 점을 빼거나 주름제거 박피 시술 시 사용된다.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는 수면유도제 ‘프로포폴’ 투여 시 정맥혈관의 통증완화를 위해 쓰이기도 한다.

“저는 비아그라보다는 리도카인이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게 부정맥 응급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약이고 수술하는 병원도 아닌데 저 약이 왜 저렇게 많이 필요한 건지?” “사실 나도 리도카인 180개에 대한 의문은 아직 못 풀었다. 청와대에 수술 방을 (새로) 차렸나?” 의사들이 SNS에 올린 글이다. 대형 약국을 방불케 하는 청와대 의무실의 의약품 구입 목록에 리도카인 마취제가 필요 이상(?) 많아 보인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세상의 관심은 죄다 선정적인 비아그라와 팔팔정에만 꽂혀 있다는 거다. 청와대 의무실장은 이에 대해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을 할 수술실도 없고 직원들 외상 처치 시 통증 감소를 위해 사용했다”는 해명을 내놓아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청와대 의무실이 그동안 박 대통령의 불법 시술을 알고도 모른 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문제는 더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밝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발기부전 치료제 외에도 일명 태반주사(라이넥주), 감초주사(히시파겐씨주), 마늘주사(푸르설타민주) 등을 적잖이 구입했다. 주로 치료보다는 보양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박 대통령이 사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짙다. 간 기능 개선을 위한 태반주사 등은 정통의학 쪽에선 보완대체요법 정도로만 인정되는 시술이다. 보완대체요법이란 말 그대로 주된 치료법보다는 보조적으로 쓰이는 치료법을 가리킨다. 미국의 돌팔이 의료 감별 사이트(www.quackwatch.org)는 이들 주사 행위에 대해 속칭 중풍예방주사로 불리는 ‘킬레이션요법’과 더불어 의학적으로 근거 없는 시술이라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위한 청와대 의무실의 해명이 참담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고, 의료자원의 왜곡 이용을 막아야 할 대통령이 되레 불법시술과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애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막가자’ 상황이다. 당신은 비뚜로 가면서 국민에겐 똑바로 가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박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비아그라 및 각종 주사제와 마취제를 구매했든지, 청와대 전 직원을 위해 그랬든지 결론은 같다. 다시는 청와대의 일탈이 우리 의료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빌미가 되지 않게 막는 것이 중요하다.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같이 날카롭고 엄중히 살피고 소같이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일반인 역시 특권층이 애용했을 것이란 막연한 사실에 기대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각종 시술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약 하나를 복용하더라도 꼭 전문가와 상의 후 호시우보 했으면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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