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최순실 너머에는 기사의 사진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1일 사실상 마무리됐다. 최씨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인물들은 속속 서초동으로 불려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재벌총수까지 모두 조사를 받아야 했다. 예외가 한 명 있다. 박 대통령을 가장 오랫동안 보좌해온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다. 많은 이들이 최씨 너머에는 정씨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는 건재했다.

정씨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때 정치권에 처음 등장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엄삼탁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맞붙었다. 엄 후보가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해 이른 봄 정씨는 박 대통령과 함께 기자를 찾아왔다. 운전기사였던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상대 후보가 돈을 마구 뿌려댄다”며 울먹이는 표정으로 호소했다. 선거 이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다시 만난 정씨는 ‘실장님’이 되어 있었다. 2012년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전 보좌관과 문고리 3인방을 휘하에 두고서다. 보좌진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지만 정씨는 기자단과 자주 식사를 하는 등 박 대통령 홍보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박 대통령이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비서실장을 맡아 곁을 지켰다. 정씨는 2004년 의원회관을 떠났지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초까자 비선 캠프 ‘강남팀장’이라는 별칭으로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정씨가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14년 5월 전후였다. 다소 엉뚱한 이혼 소식이었다. ‘결혼 생활 관련 누설 및 비난 금지’라는 이혼 조건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통령 관련 부분일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해 11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삶에는 언제나 ‘박근혜’가 존재했던 것이다.

정씨는 지난해 1월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후 박 대통령을 만난 적 없다”고 말했다. 정말 정씨는 2007년 이후 박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혼 뒤엔 최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며 “제가 있을 땐 절대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와 보좌하는 스타일이 달랐다고 했다. 유추해 보면 적어도 2014년 5월 이혼 전엔 박 대통령 보좌에 일정 부분 관여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는 박관천 전 경정의 전언은 이런 추론을 뒷받침해 준다. ‘십상시(十常侍) 모임’에서 각종 지시를 했다는 의혹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이창재 법무차관조차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고 공식 인정할 정도다.

정씨는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 미행설에도,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제기한 비선라인 ‘만만회(박지만-이재만-정윤회)’에도 등장한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 과정에도 이름이 나온다. 이런 탓에 2007년 이후 박 대통령과의 연을 끊었다는 정씨의 말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정씨는 “할 말은 많지만 지금 나서면 그분께 누가 될 것”이라며 “언젠가는 말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지금 아닐까.

특검이 본격 수사를 앞두고 있다. 수사 대상 15가지 항목에 정씨 이름은 빠져 있다. 그러나 15번 항목은 별도 인지한 사건도 수사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정씨 수사 가능성은 열려있다. 더 이상 국정농단의 과거가 대한민국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최씨 너머에 숨어 있는 제2, 제3의 최순실을 찾아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든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최순실 너머 종착지에 서 있는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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