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이정현 대표의 율법 기사의 사진
그악스럽다. 이상하리만치 크리스천 권력 엘리트들에게 그런 면이 있다. 그들에게는 끈질기고 억척스러운 장점이 있으며 동시에 보기 사납고 모진 데가 있다. 신앙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그악스럽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경우다. 신앙을 모본으로 감싸려 해도 애증의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대표는 이 즈음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렸다. 지난 10월 초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들어 단식에 들어가면서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정치적 신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 지난달 24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광주 연설을 거론하며 “예수를 부인하는 유다가 되란 말인가”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그는 최태민이라는 사교 교주로 인해 촉발된 이 난국에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순교를 각오한 듯하다. 그 자세가 종교적 신념화됐다. 그래서 성경책과 가롯 유다라는 성서 인물을 맥락지어 국민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그의 신앙화된 신념은 불편하다. 부당한 훈계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훈계는 상식조차 되지 못한다. 국민은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권력의 상식 밖 전횡에 분노하는데 선출직 국회의원이며 집권당 대표가 성서를 메타포로 삼고 있다.

세상사람 대개는 상식으로 살아간다. 법률에 매이지 않고도 선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근간이 상식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각자가 본성, 즉 상식에 따라 움직여도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배려의 공동체이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롬 2:14∼15)

성경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도 본성에 따라 행한다면 그들 양심이 율법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원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겐 이 같은 본성, 즉 상식 너머의 관계 율법이 주어진다.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요소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인정받을 수 있기 위해 율법적 관계임을 고백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심판의 주체로 모실 수 있다.

신앙인 이정현은 하나님과의 율법적 관계임을 공개적으로 국민 앞에 드러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롬 2:12)를 새겼을 것이다.

이는 세상 법 너머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하는 것이 율법이고 이 율법을 실행해야 비로소 참 신앙인이라는 걸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심령이 가난하고, 육신이 고통받고, 억울하게 갇힌 자를 대변하라는 것이 예수의 명령이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된다. 이때 백성 대표들이 르호보암에게 간청하기를 “당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워준 중노동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탄원한다. 솔로몬은 ‘부귀영화’의 대명사이나 실상은 호화생활, 외국 후궁으로 인한 이방신 섬김, 강제 징집과 노역 등으로 당시 백성의 삶의 질은 형편 없었다. 르호보암은 사흘 동안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는 사흘간 원로와 젊은 신하 그룹을 만난다.

원로들은 ‘백성의 종이 되어 섬기라’(왕상 12:7∼8)고 했다. 한데 측근 신하들은 처음부터 만만하게 보이면 통치 못한다며 강경책을 제시한다. 이에 르호보암은 신하들 얘기를 듣고 ‘내 아버지는 가죽채찍으로 매질했지만 나는 너희를 쇠채찍으로 치겠다’(왕상 12:14)고 한다. 결국 르호보암의 무능과 압정으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된다.

이 대표는 현 시국을 상식으로 말해도 된다. 괜한 성경 끄집어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기 바란다. 이는 사람의 계명으로 훈계(사 29:13)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글=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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