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청와대 앞 분수대 기사의 사진
청와대 서쪽 앞 분수대 자리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효자동 전차 종점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운행된 전차는 서대문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거쳐 효자동까지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1960년 4·19혁명 때는 경찰의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이곳에 쳐졌다. ‘우리 시위는 평화적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무대(현 청와대) 쪽으로 향하던 시위대에 밀리자 경찰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최초의 발포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 피는 저항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라는 시민혁명으로 완성됐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장소에는 현재 분수대가 설치돼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5년 11월 18일 완공된 분수대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상이 우뚝 솟아 있다. 하늘 위로 치켜올린 날개가 대한민국의 웅비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분수대의 탑신(塔身)은 12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에는 십장생도가 조각돼 있다. 권위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던 이곳이 시민의 품에 안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3년 2월 청와대 앞길이 처음 개방됐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8년 4월에는 광장으로 조성돼 ‘국민의 앞마당’으로 탈바꿈했다.

4·19혁명 후 56년이 흐른 지금 대규모 시위대가 다시 한번 이곳으로 집결할 태세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3일 열리는 6차 촛불집회 때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분수대까지 진출하겠다는 얘기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1·2차는 청와대에서 1.8㎞로 떨어진 광화문 세종대왕상까지, 3차는 800m 거리인 내자동 로터리까지, 4·5차는 200m 거리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접근했다.

집시법 11조는 대통령 관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 시위를 금하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과 시민단체 간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촛불민심이 청와대 코앞까지 들이닥칠 정도로 엄중해졌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준엄한 목소리를 무겁게 듣겠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가는 안 될 일이다.

글=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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