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과 私구분 않는 의식… ‘후진적 사건’의 뿌리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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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한국사회 거대한 적폐의 뿌리를 드러낸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각종 비리와 부정에는 대기업 대학 관공서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얽혀 있었다.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부실이 까발려진 셈이다. 국민일보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10명을 인터뷰했다.
우리 사회 부정부패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짚어보기 위해서였다. 학자 대다수가 지적한 부분은 한국인의 그릇된 가치관이었다.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기인했다는 것이다. 합리성 상식 법치 등으로 대변되는 근대성의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국인의 의식,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그는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열람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겠느냐” “시스템으로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은 하나둘 사실로 밝혀졌다. 전문가라 불리는 관료들은 봉건국가의 가신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는 “외적인 발전 수준으로 근대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 드러난 우리 의식의 근대성은 바닥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적인 일들이 다뤄지는 점이 근대성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 역시 비슷한 견해였다. 그는 “공적인 문제를 사적인 이해관계로 대하고, 개인의 이익을 잣대로 판단해버리면서 각종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라며 “한국인은 근대성이라는 옷은 입었지만 의식 수준은 멀었다. 한국이 과연 근대성을 갖춘 국가인가 자문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은 “이성적인 사고, 합리적인 판단이 배제된 전근대적인 사건이 계속 터지고 있다”면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대표되는 집단주의가 정말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국인의 불분명한 공사 구분을 지적하면서 그 배경이 무엇인지 분석한 책이나 논문은 수없이 많다. 가령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작 ‘한국인 코드’(2006)에 이렇게 적었다.

‘연고주의, 정실주의, 가족주의는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갖고 있거니와 일상적 삶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것들이다. 그 누구도 그걸 ‘악(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 사는 인정’의 실천 원리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부정부패는 그 원리를 거름 삼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연고 정실 가족 등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인격주의’를 뜻하는 ‘퍼스널리즘(personalism)’이라는 용어를 통해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인에게 내재된 인격주의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의리와 집단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인격주의 탓에 공사 구분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저질러도 가족을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 한 일이라는 생각 탓에 죄책감도 덜 느낀다.”

유교문화 전통에서 문제의 이유를 찾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과정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는 ‘사적 네트워크’를 강화시킨다는 주장이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한 심리학 실험을 예로 들었다. 성과를 강조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해 보면 성과를 중시하는 집단에서 속임수와 반칙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원인 중 하나”라며 “한국의 성장이 그동안 물질적인 성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신적인 성숙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했다.

우리 안의 최순실, 해법은 어디에

올해 한국사회를 뒤흔든 이슈 중 하나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었다. 시민들은 대체로 김영란법을 반겼지만 내수경제 위축 등을 이유로 법 시행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영란법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많았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김영란법의 핵심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분리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 법에 반대했다”면서 “공사 구분이 명확한 사회를 꿈꾼다던 시민들이 모순된 행태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깨끗한지, 내면에 ‘최순실스러운’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투명성 강화를 위해 우리 사회에 강력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최순실 사태의 경우 청와대만 하더라도 사실상 ‘법외 조직’처럼 굴었다. 청와대의 권력 행사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법이 마련돼 있지 않거나 잘 작동하지 않으면 특정 집단이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열 교수는 “독감에 걸렸을 때 독한 약을 먹지 않으면 폐렴에 걸리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투명성’이라는 약을 세게 처방해야 한다”며 “공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은 공사 구분에 예민해져야 한다.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잘못된 ‘일상’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해법을 내놓더라도 단기간에 우리 사회에 가시적인 변화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 완성한 근대성의 가치를 한국 사회가 수십 년 만에 습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신광영 교수는 “의식 구조 개선을 위한 교육이 철저히 이뤄지더라도 효과는 20∼30년이 흐른 후에야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독일의 사례를 언급했다.

“독일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국민의 의식이 개선되기 시작한 계기는 1960년대 젊은 세대가 주도한 6·8운동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독일 사회에 잔재해 있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뤄졌다. 교육 제도가 바뀌었고, 공공기관도 개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일의 6·8운동처럼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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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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