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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권력이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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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국민이 매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몇 주째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우려했던 폭력 사태는 한 번도 없었다.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시위대가 오히려 말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집회는 마치 거대한 국민축제 같았다. 온갖 기발한 방식의 시위와 퍼포먼스가 광화문 광장에 등장했다. 시위 방식은 제 각각 다양했다. 그러나 거대한 촛불의 물결 속에서 국민의 요구는 하나였다. 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촛불로 밝히고 있다. 진보 보수를 망라하고 한 광장에 이렇게 국민이 모인 적이 있었을까. 국민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고, 한 마음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탄핵 위기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이 애초에 공약한 국민대통합을 이제야 이룬 셈이다.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만약 루터가 와서 이 시국을 보면, 뭐라 했을까. 루터의 ‘식탁담화’를 꺼내 보았다. 식탁담화는 루터가 멜랑히톤 등 동료 교수들, 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국가와 사회라는 제목이 붙은 장에서 루터는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은 제왕들을 어린이가 가지고 노는 카드처럼 여긴다. 어린이는 놀이가 끝나면, 카드를 아무데다 놓거나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나님도 제왕들을 그렇게 카드처럼 쓴다는 것이다. 쓰임을 받는 도중 지나치게 통치를 잘못하면, 하나님은 그 위에서 권력자를 내려쳐 다 쓴 카드처럼 버린다. 루터는 그 근거로 누가복음 1장 52절을 들었다.

루터의 생각에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기에 제왕이 가진 권력은 원래 자기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권력은 하나님이 권력자를 쓰시는 동안에 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왕들은 권력을 자기 것인 양 마구 행사한다. 그리고 그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가 통치를 그르치게 되고, 하나님에게 다 쓴 카드처럼 내쳐지게 된다.

루터가 식탁 담화에서 했던 이 경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영국 국왕 찰스 1세는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영국의 국교회를 실질적인 가톨릭교회로 바꾸려 했다. 대주교 로드를 시켜 자신의 종교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죽이거나 귀를 자르는 등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벌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고 있던 의회를 무시하고, 힘으로 전제정치를 폈다. 참다못한 의회가 1641년 11월 22일 즉위 이후 찰스 1세의 실정을 200개 조항에 걸쳐 낱낱이 밝힌 ‘삼가 시정을 요구한다’는 뜻의 ‘대간의서(Grand Remonstrance)’를 159대 148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찰스 1세는 결의문 통과를 주도한 상원의원 1명과 하원 의원 5명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아예 400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직접 의사당으로 체포하러 나섰다. 몸을 숨긴 의회의 지도자들은 왕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전쟁은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에 의해 찰스 1세의 패배로 끝이 났다. 영국 의회는 재판을 열어 왕을 심판했다. 찰스 1세는 적법한 왕인 자신의 권한은 무한하며, 어떠한 권력도 자신을 심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국 고등법원은“영국국왕은 국가의 법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에 따라 제한된 권력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찰스 1세에게 반역과 모반의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했다. 1649년 1월 30일 뱅크위딩 하우스 앞 광장에서 찰스 1세는 도끼에 목이 잘렸다. 만약 찰스 1세가 ‘식탁담화’에서 루터가 했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처럼 비참한 최후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루터가 했던 말이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루터는 권력이 하나님에서 온다고 말했다. 이 말은 권력자에게 항상 권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한시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공복, 즉 나라의 큰 머슴이라 할 수 있다. 머슴이 주인행세를 하려 할 때, 나라는 불행해지고, 국민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 주인행세는 오래가지 않는다. 국민은 쓰던 카드를 냉정하게 쓰레기통에 버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내년,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될 것이다. 주인을 두려워하며,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큰 머슴을 지혜롭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동희<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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