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정권’ 혼내는 촛불… 시민사회는 진화 중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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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인다. 국가를 구성하는 부품으로서의 ‘국민’도 아니고 사회 갈등을 혁명적으로 해결하려는 ‘민중’도 아니다. 이들은 이 사회의 주권자로서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와 제 목소리를 내려는 독자적인 개인들, 즉 시민들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에게 위임해준 권력이 잘못 행사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 주권자의 책임이다. 더 적극적으로, 정당성 잃은 정부의 법은 따르지 않겠다는 ‘시민 불복종’도 촛불 집회의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했다. 대통령, 정부, 국회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다시 이 사회 권력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 시민이다.

건너뛴 시민사회 형성의 역사

한국의 근현대사는 시민을 길러내지 못한 역사였다. 일제 강점기 ‘국민’은 일본 국민, 황국 국민이었다. 조선인을 국민이라고 부를 때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일본이 국가인 상황에서 조선의 국민은 어떠한 주권도 갖지 못했다. 국민이기 전에 신민(臣民)이었다.

해방 뒤에도 시민은 탄생하지 못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국가가 출범했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의 바탕 위에서 건립된 국가가 아니었다. 강대국의 아귀다툼 끝에 한반도의 허리가 잘렸고, 두 개의 정부가 세워졌다. 외세의 개입 속에서 치러진 6·25전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국가였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시민혁명 뒤 국민국가가 탄생한 것과 달리 시민의 목소리는 국가 건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후 한국 사회는 시민 대신 ‘국민’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국민총화, 국민단결, 국민체조 등이 그 예다. 한국인이라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해야 했고, 하절기엔 오후 6시, 동절기엔 오후 5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안보 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저항적 민주주의’는 싹틔우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시민의식을 교육받을 기회도 없었다. 단지 충효사상으로 변질된 국가 이데올로기만 교육받았을 뿐이다. 이때의 국민은 사회의 주권자라기보다는 경제 발전을 위한 구성품에 가까웠다.

물론 근현대사에서 시민이 출현한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60년 4·19혁명은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돼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표현처럼 이 순간은 소시민으로 살던 한국인에게 ‘희망의 환풍구’가 됐다. 그러나 곧 이어 터진 5·16군사정변은 다시 시민사회의 싹을 잘라버렸다.

1987년 6월항쟁 때도 시민의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때 시민은 ‘민중’에 가깝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1987년 항쟁 당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집단적 성격이 강해 민중에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의 주체가 ‘민중’이었다면, 민주주의 제도화와 발전의 주체는 ‘시민’이라고 구분지어서 설명한다.

현재 시민사회 성숙도는?

2000년대 들어 거리와 광장의 주인은 시민이었다. 독재와 가난이 물러간 자리에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국가에 맞서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2년 효순·미선 미군 장갑차 사망 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08년 이명박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 2009년 노무현 대통령 노제 때 광장에는 시민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10월부터는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다시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사회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볼 수 있을까.

최갑수 교수는 이번 박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에서 시민사회의 희망을 발견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집단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개별적인 주체로서 광장에 나오는 사람이 많다”며 “시민을 ‘권력 형성의 주체’라고 정의 내린다면 진정한 의미로서 시민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시민사회가 충분히 여물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껍데기만 있는 상태이고, 아직 성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서구 시민사회는 100∼200년에 걸쳐 발전한 개념인데 한국은 겨우 50여년밖에 안 돼 시민의식 성숙을 기대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또 “시민사회가 구축된 건 1987년 이후로 봐야 하는데, 당시 대중운동이 정치화됐고 국가 영역이 강화되면서 중앙집권적 사회가 돼 시민사회가 성장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착한 시민사회”라고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평가를 한정했다. 그는 “한국이 독재시절을 오래 겪다 보니 긴장관계가 억눌려 있어서 그런지 요즘 집회 구호가 ‘나라가 이 모양이냐’며 국가를 먼저 걱정한다”며 “국가가 보기에 불량한 시민사회가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상적인 차원에서 시민사회를 평가하며 “아직 시민들이 직장 등에서 이기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 현상도 많다”며 “대통령 하야와 관련된 이슈들을 살짝 걷어내면 민주주의 혹은 시민사회의 원칙 등이 미비한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송호근 교수는 책 ‘나는 시민인가’에서 “시민은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중시하면서 자제와 양보를 통해 공익에 기여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시민 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시민사회 성숙을 위해서는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교육풍토 개선이 분명히 필요하다”며 “순위를 매겨 1등한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법칙을 고쳐나가야 한다. 또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는 하는 것도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분노조절장애 사건 등은 비민주적인 사고에서 등장하는 것”이라며 “초등학교부터 민주주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일상적인 시민 참여공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17세만 돼도 노조·정당 활동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런 훈련을 받아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훈련이 되는데 한국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갑수 교수는 이번 집회로 성숙의 계기를 갖게 된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거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의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 못 했기 때문에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편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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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성민 최예슬 기자 wood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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