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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지호일] 최 수석의 명예

[한마당-지호일] 최 수석의 명예 기사의 사진
내가 아는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은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2012년 말 검사들의 잇단 추문으로 궁지에 몰린 한상대 검찰총장이 불쑥 중앙수사부 폐지 카드를 내놓자, 중수부장이던 최 수석은 짐을 싸고 사표를 내려 했다. 자신의 대에서 중수부 명맥이 끊기게 됐으니 책임을 지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한 총장이 특수부 반발의 싹을 자르고자 좌장인 최 수석에 대한 공개 감찰을 지시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는 “검사로서 부끄러움이 없다”며 총장 지시에 항명했다. 불명예 퇴진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검란(檢亂)의 발발이었다. 한 총장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퇴진했다. 최 수석도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 대신 좌천 인사가 내려졌다.

2014년 7월 순천의 매실 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임이 드러난 날, 최 수석은 “수사는 피했지만 하늘의 벌은 피할 수 없었던 게지. 300여명의 영혼이 데려간 것 아니겠소”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다음날 수사팀 검사들의 사표를 돌려보내고 혼자 검찰을 떠났다.

민정수석 제의가 왔을 때 그는 거듭 고사했다. ‘불타는 수레’에 뒤늦게 뛰어들 이유도, 현 정부에 빚을 진 것도 없었다. 그의 선택에 후배 검사들은 검찰 출신 선배의 옛정을 앞세운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최 수석은 임명장을 받은 지 닷새 만에 사표를 냈다. 해석과 억측이 난무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의 사직서에 내 것 하나 얹었다. 이게 참모로서의 도리”라고만 했다.

나는 그가 명예를 생각했으리라 본다. 사냥개로 여겼던 검찰에 물려버린 대통령의 분노를, 총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들에 대한 인사 압박을, ‘뼛속까지 검사’라는 최 수석은 감당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청와대로 출근 중이다. 사표는 보류 상태다. 대통령 탄핵·특검 대비라는 현안이 정리되면 최 수석도 곧 결단을 내릴 터다. 지금의 청와대엔 그가 지켜야 할 명예가 남아 있지 않다.

글=지호일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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