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까지 발로 뛰는 ‘문서 선교’

국민일보로 복음 전하는 2인

땅끝까지 발로 뛰는 ‘문서 선교’ 기사의 사진
국민일보는 문서선교의 사명을 띠고 28년을 분주하게 뛰어왔다. 땅끝 선교지에선 복음실은 전도지로, 평생 국민일보를 배달해온 한 지국장에겐 그 자체가 축복의 통로였다. 한 청년독자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를 읽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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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있기 때문에 전도지 돌린다는 마음으로 28년째…”

대전 유성지국 강춘호 지국장


대전 유성지국 강춘호(61) 지국장은 복음 실은 국민일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진짜 문서선교사’다. 유성구 유성대로에 있는 이 지국은 유성구에 세워진 첫 지국이다. 이후 6개 지국이 더 생겼다.

강 지국장은 국민일보 창간 이후 28년간 국민일보 단독 지국을 운영하고 있다. 단독지국은 국민일보만 배달하는 지국이다. 대개의 지국은 여러 일간지를 같이 취급한다. 단독 지국을 유지하기가 재정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일보 배달을 돈벌이로 생각했다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라며 “국민일보에는 복음이 있기 때문에 전도지를 돌린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강 지국장은 국민일보 창간 전에 다른 신문사의 지국을 운영했다. 국민일보가 창간된 후 임시로 국민일보 배달을 부탁받았다. 다른 신문은 조간이고 국민일보는 석간이어서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예 국민일보 지국을 맡았다. 그의 두 아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국민일보를 배달했다. 아내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녔다. 지금 두 아들은 모두 결혼해 아버지에게 손주 3명을 안겨줬다.

그동안 국민일보만 배달한 것은 국민일보를 통해 큰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를 배달하면서 술과 담배를 단번에 끊었다. 2004년도에는 집도 갖게 됐다. 그는 “단지로 구성된 빌라로 이름이 ‘국보주택’이었다”며 “‘국민일보 주택’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일보를 통해 복음을 전하니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고 믿는다”고 했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많다. 국민일보가 석간이었을 때, 구독자의 주택 현관 앞에 신문을 놓고 돌아서는데 안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빈집에 가스레인지가 켜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에서 무언가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옆집 사람을 불러 같이 들어가 불을 껐다.

알고 보니 집주인인 젊은 부부가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은 것을 잊고 수요예배에 간 것이었다. 강 지국장은 “이 부부가 믿음이 좋으니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통해 돕는구나”라며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대전 유성광명교회(김현주 목사) 안수집사로 발 마시지 봉사자로도 유명하다. 교회에서 발 마사지를 배운 그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유성구 봉명동 유성온천 내 족욕 체험장에서 무료로 발 마사지를 하고 있다. 오후에는 경로당의 노인들을 위해 봉사한다. 강 지국장은 “국민일보를 배달하며 받은 은혜에 비하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현지 지식인들에게 신문 전달하며 전도지로 유용하게 사용”

아프리카 선교사 함에스더


파란눈의 선교사들은 130여년 전 암울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다. 헐벗고 굶주리던 이들에게 복음은 밝은 빛이요, 소망으로 곳곳에 퍼져나갔다. 복음은 세상의 희망이다. 함에스더(61·여) 선교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의 선교 자원은 복음 실은 국민일보, 그것도 ‘철 지난’ 국민일보다.

아프리카 A국에서 제자양성과 급식지원 등의 사역을 하고 있는 함 선교사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2000년부터 훈련을 받으며 선교를 준비해온 그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서대문 총회 소속이다. 첫 파송지는 중국이었고 아프리카로 사역지를 옮긴 건 2014년이다. 굶주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중점을 두는 사역은 제자양성으로, 현지인을 선발해 한국에서 신학교 과정을 밟게 한 뒤 현지인교회 목회자로 세우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은 함 선교사가 재활용 자재들을 구입해 제자들의 방을 손수 만들 정도가 됐다. 한국의 초대교회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는 셈이다. 함 선교사의 인터넷 카페에는 현지 교회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글이 올려져 있다. ‘낡은 철재들을 이어 붙여 만든 깡통교회이지만 이곳의 영혼들엔 불타는 듯 여호수아의 기백이 담겨 있습니다.’

함 선교사는 낯선 외국에서 문화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서 챙겨온 날짜 지난 국민일보가 큰 힘이 됐다. 이후 현지 지식인들에게 복음 실은 국민일보를 전달하며 전도지로도 유용하게 사용했다.

함 선교사는 국민일보를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보내주는 후원자 중 한 사람이다. 국민일보 선교협력팀 관계자는 “그동안 몇 차례 보내기 후원금을 통장으로 보내주셨다”며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지난해 11월 처음 뵈었는데 그때 선교사님인 것을 알았다. 현지 사정도 힘드실 텐데 후원하시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 선교사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형수나 갇혀 있는 재소자들이야말로 가장 큰 고뇌를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픈 만큼 심정이 변화돼 주님의 도구가 된다면 지구촌의 질서는 조금씩 좋게 변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를 통해 재소자들의 영혼이 변화되는 것 역시 선교사역의 연장선이라 본 것이다. 함 선교사가 전해준 마지막 메시지가 울림을 줬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기까지 국민일보가 지속적으로 빛의 역할을 해주시길….”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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