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북한산을 울리는 총성 기사의 사진
지난 여름방학 때 북한산에 오른 적이 있다. 폭염에 평일이라 산은 고요했다. 불광동 계곡을 지나 1시간 정도 비탈길을 오르니 향로봉의 우람한 자태가 건너편에 나타났다. 너른바위에서 북한산 너른 품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쿵! 쿵!” 하는 소리가 능선을 타고 올라왔다. 귀를 세우고 알아본즉 송추 쪽 예비군 훈련장에서 나오는 사격 소리였다.

그랬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 두꺼운 예비군복을 입고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고, 총기사고 생기는 사격장에서 표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고작 몇 천원에 종일 시간을 바치는 이유는 예비군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였고, 어기면 제재가 따르기에 지키는 것이다. ‘열정 페이’에 빗대 ‘애국 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서 말한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보면서 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안도한다. 건장한 젊은이들이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심야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잠을 청한다는 작가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늦게 귀가할 때 정릉터널을 환히 밝히는 불빛을 자주 만난다. 이른 퇴근길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차선을 도색하거나, 도로표지판을 갈거나, 환풍시설을 손보는 작업을 꼭 심야시간에 한다. 그들이라고 왜 ‘저녁이 있는 삶’이 없을까. 고깔 모양의 로드콘을 세워도 사고 위험은 높다. 그래도 그들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존중하는 자세가 있기에 시민들 편의를 위해 교통량이 적은 시간을 택한다.

이런 시스템은 그저 구축되는 게 아니다. 왕조가 무너진 후 식민과 전쟁과 독재를 거쳐 민주공화정을 정착시킬 때까지 노력하고 공 들인 결과다. 코리안 타임을 없애고, 계약을 준수하며, 납세와 국방 의무가 지켜진다는 것, 죄와 벌이 사법제도로 구현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나라를 후진국이라 부른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는 겉으로 보이는 시스템이 그럴싸해도 속으론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순결한 촛불로 내부를 비춰보자. 감시견 역할을 위임받은 주체들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컹컹 짖어댔을 뿐 제때 경고음을 내지 못했다. 압도적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의원들은 정쟁에 바빴고, 공직자 비리를 척결해야 하는 검찰은 문제가 생길 때 뒤치다꺼리할 뿐이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주변관리는커녕 스스로 관리 대상이 되고 난센스의 주체가 되고 말았다.

교육계는 어떤가. 깨어있는 지성으로 양심의 등불을 밝혀야 할 대학은 꼿꼿한 자존은커녕 달콤한 돈의 유혹에 백기투항했다. 온갖 비리를 모은 종합세트로도 부족해 부정입학이라는 국민적 금기까지 건드렸다. 언론은 이번에 제법 공로를 세워 김영란법의 ‘밥이나 얻어먹은 부류’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탐사에 들어간 시점이 너무 늦었다. 재벌의 행태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다. 각자 제 자리를 제대로 지켰다면 이런 역사적 불행이 없을 것이다.

광화문에 모이는 시민의 성향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땀 흘리며 사격훈련을 한 예비군들, 정릉터널에서 심야작업을 한 노동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이 시스템과 공동선에 따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동안 구중궁궐의 권부에서는 뱃놀이나 하고 있었으니 분노하고, 개탄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고장 난 시스템, 낙후된 문화를 고치지 않으면 역사가 후진한다. 촛불이든, 탄핵이든, 하야든 숨 막히는 12월의 정치 일정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은 붕괴된 믿음의 가치를 재건하는 일이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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