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아름다운 퇴장 기사의 사진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2005년 은퇴를 선언해 워싱턴 정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방암으로 고생할 때도 묵묵히 일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24년간 몸담았던 종신직 자리를 내던진 것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억을 잃은 남편은 2년 뒤 요양원에서 만난 다른 할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오코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오코너 아들이 전한 바다.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하다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겨우 5년간 권좌에 머물다 떠났다. 많은 국민들이 만류했지만 미련 없이 권력을 내려놓았다.

시인이 노래했듯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대중의 숭배에 눈멀고,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박수 받을 때’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인기절정에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도 그럴진대 ‘마약 없이 권력에 중독된다’는 정치인들이야 오죽하랴. 1992년 대선 패배 뒤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영국 연수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며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다가 2년여 만에 복귀한 어느 정치인의 마음도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존 키(55) 뉴질랜드 총리가 5일(현지시간)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2008년부터 3선 연임 중인 그의 임기는 1년가량 남아 있다. 집권당 지지율이 50%에 이르고 경제도 성장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발표다. 이유는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그는 “권력을 내려놓지 못한 숱한 지도자들을 봐왔다. 당은 새로운 리더를 필요로 하고 지금이 떠날 적기”라고 했다. 어째 귀 막고 청와대에 앉아계신 분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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