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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혜림] 여성 이전에 대통령이었어야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엄격히 이뤄져야… 실망감이 여성 비하로 확산돼서는 안돼

[내일을 열며-김혜림] 여성 이전에 대통령이었어야 기사의 사진
그는 머리를 잘랐어야 했다. 18년 전 정치를 시작했을 때. 적어도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야 하는 올림머리를 그만둬야 했다.

그랬다면 국민 304명이 찬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올림머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찬 바닷물 속에는 수학여행길에 들떠서 참새처럼 재잘거렸을 청소년 250명도 있었다. ‘세월호 의혹 7시간’ 중 겨우 1시간여가 밝혀졌을 뿐인데…. 나머지 시간들은 또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지 두렵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적 소통을 훌륭하게 하고,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우리나라를 21세기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여자 대통령.”

2013년 1월 2일자 국민일보에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5년 후 이런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는 칼럼을 썼다. 임기가 1년여 남은 지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그는 탄핵으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준비된 여성 대통령임을 내세웠던 박근혜 후보에 대해 여성계는 여성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 여성’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책임·관계에서 불통으로, ‘인증되지 않은 유사 상표’라고 지적했다. 또 ‘여성운동의 역사와 성과에 무임승차하는 몰염치’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만사(萬事)’라는 인사부터 여성계의 주장을 확인해줬다. 첫 내각의 여성 장관은 고작 2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그의 ‘수첩’에서 찾아낸 진주로, ‘여성 인재’임을 내세워 장관으로 임명한 1명은 대표적인 실패 인사로 꼽혔다. 뿐만이 아니다. 박근혜정부의 여성정책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2012년 108위였던 우리나라의 성 격차지수(세계경제포럼 발표)는 2015년 116위로 하락했다.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컸다.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비율은 3년 연속 하락세다. 지난해 여성 근로자의 임금은 남성의 62.8%였다. 여성 근로자의 고용 형태도 퇴보했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겠다며 내놓은 시간제 근로는 임금이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참 나쁜 일자리’다.

박 대통령을 뉴욕타임스는 ‘한국 여권 신장에 방해가 되는 인물’로 평했다. “성 불평등과 성범죄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여성을 ‘대변하지 않는’ 대통령임에도 그녀를 계기로 여성 전체가 편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남자가 할 정치를 여자에게 한번 맡겼더니 나라를 망쳤다’ ‘여자는 다시는 정치하면 안 된다’ 등등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 후보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보수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라서 표를 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감히 차용하고 싶다. 박 대통령을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뽑은 사람이라면 ‘여자라서 그렇다’ ‘여자는 이제 안 된다’고 말하라!

건국 이래 우리에게는 박 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가운데 10명이 남성이다. 그들의 공과(功過)를 논함에 있어 성별의 틀이 사용된 적은 결코 없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준엄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실망감이 여성 비하로 확장돼선 안 된다. 여성 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국력의 손실을 가져올 뿐이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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