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대구가 쓰는 반성문 기사의 사진
1945년 해방 정국 당시 대구는 좌익의 본산쯤으로 여겨졌다. 90%라는 전국 최고의 조직률을 나타냈던 지역 교원 노조는 교사운동의 중심지였고 이승만정권에 대한 전국적 무력 항쟁의 시위를 당긴 46년 10·1사건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그 시대 대구에는 사회주의 기류가 충만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큰아버지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장인인 조선건국동맹의 핵심 박상희가 10·1사건 때 경찰에 사살된 사실은 이곳 어르신들 사이에 지금도 더러 거론된다. 자유당 정권에 항거해 60년 대구에서 발발한 2·28 민주화운동은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의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일련의 사건들은 역설적이게도 진보 트라우마를 낳았다. 많은 시민이 희생된 10·1사건은 물론 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74년 ‘인혁당재건위’ 등 주요 시국 사건의 진원이었던 대구는 이후 ‘레드 콤플렉스’를 겪었다. 한편으로 박정희를 시작으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지역 출신 인사들에게 당근을 무더기로 안겼다. 단맛은 대구를 취하게 했고 ‘TK’ 동질감을 확산시키면서 보수의 정서를 공고히 했다. 지난 30여년 대구가 보수의 심장 내지 수구의 원산지란 지적을 받는 까닭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중선거구였던 85년 이후 31년 만에 대구에서 처음 야당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야권의 무소속 국회의원도 뽑혔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안식처였던 서문시장 민심도 달라졌다. 화재 위로차 지난 1일 시장을 찾은 대통령은 몇 십 명의 박사모 응원보다 훨씬 야멸찬 다수 상인들의 항의를 맞닥뜨리고 서둘러 떠났다.

지난 6일 대구의 각계 인사 1381명은 시국과 관련 ‘대구가 쓰는 반성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국도 부끄럽고 대구도 부끄럽고 나도 부끄럽다’며 정치 맹종을 뉘우쳤다. 대구가 고향인 나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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