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전수민] 믿는다는 것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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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수민이에게. … 내년에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동생과 잘 지내야 한다. 산타 할아버지가.”

산타클로스의 편지를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발견해버렸다. 그것도 아빠 책상서랍에서. 편지 속 글씨는 아무리 봐도 책상 위 메모지에 적힌 아빠 것과 모양이 같았다. 얼얼함이 정수리부터 심장을 관통해 발끝까지 찌르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빠 책상이나 뒤적거리는 못된 애를 급습한 벌이었나보다. 내 탓이다.

하나님, 예수님과 무슨 사이인지, 천사인지 사람인지, 왜 할머니는 없는지, 산타에 대해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믿었다. 그래서 속았다. 기억 속에 각인된 최초의 배신이다. 여덟 살짜리 마음에는 퍽 강렬한 충격이었다. 지금도 그 편지 속 파란 활자들이 눈에 선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믿다’라는 단어의 첫 풀이는 이렇다.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아무 의심 없이 다른 무엇이라고 여기다’라고 적혀 있다. ‘꼭 그렇게 될 것’, ‘아무 의심 없이’라는 표현이 선포하듯 믿음은 순도 100%의 마음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만 믿음의 경도는 제각각이다. 작은 외부 충격에 틈을 드러내는 믿음이 있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데 꿈쩍 않는 믿음도 있다. 믿음이 깨질 때는 늘 단단함에 비례하는 통증이 찾아온다.

어른이 되는 것은 곧 조리 있게 의심하는 법을 훈련하는 일이었다. 내게 맞닿은 세상이 넓어질수록 기만과 배신의 경험은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마다 속절없이 크고 작은 마음의 성장통을 앓았다.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는데 안 되는 일들이 숱했다. 의인은 상을,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종종 통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스템을 쉽게 믿어선 안 됐다. 기자가 된 뒤 허다한 믿음이 엎어지는 광경을 곳곳에서 더 생생하게 목격했다. 보금자리라 믿던 곳에서 가정폭력으로 죽어나간 이들이 있었고, ‘서울중앙지검’을 사칭한 전화에 속아 전 재산을 잃은 어르신들이 있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배가 가라앉았다. 전원 구조됐다던 승객들은 시신으로 돌아왔고 일부는 아직 바닷속에 있다.

올해의 끝을 집어삼킨 ‘국정농단’ 사태도 복잡하게 얽힌 믿음들이 제각기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었다. 제도가 공정하다 믿고 밤낮없이 공부한 학생들이 ‘돈도 실력’이라는 스무 살 정유라씨 앞에 좌절했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믿었던 어른들은 비선실세의 전횡에 까무러쳤다. 이를 감지하고 해결해야 할 사람들은 눈을 감거나 오히려 도움으로써 모두를 속였다. 박근혜 대통령 설명대로라면 본인도 ‘개인적 인연’을 믿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최순실씨는 또 그 나름대로 다른 인연들이 믿음을 저버리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며 분통해할지도 모르겠다.

국민 51.6%의 단단한 믿음을 딛고 시작한 대통령이었다. 모든 국민이 실망했지만 특히 대통령을 믿고 표를 던졌던 이들의 견고한 마음까지 산산조각났다. 4%만 남기고 ‘콘크리트 지지층’이 부서질 만큼 충격적인 기만이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들이 겪은 낙심의 통증을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시위대를 ‘종북좌파’로 여겼던 사람들까지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시위를 해본다는 중년의 부부가,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이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나왔다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배신당했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살을 에는 고통이라는 것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9일 가결됐다. 한 달 넘게 광장을 밝힌 촛불이 해낸 것이다. 배반의 통증을 딛고 바뀔 거라는 기대를 품은 채 아이부터 노인까지 온 국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휴일을 반납하고 첫눈을 맞으며 청와대로 향했다. ‘헬조선’이라고 한탄했던 대한민국을,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랬다. 국민들은 또 속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다음 사람을 믿을 것이다. 다시 낙심할 수 있음을 알고도 공의로운 세상을 소망할 것이다. 아끼는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이곳을 사랑해서 그렇다. 국민의 상한 마음을 정쟁의 제물로 삼지 않고 다독일 지도자들이 필요한 때다.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망가진 믿음을 촛불로 승화시켜 심판할 줄 안다는 걸, 그걸 세계가 지켜봤다는 걸 말이다.

글=전수민 국제부 기자 suminis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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