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광화문의 약속과 배신 기사의 사진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통령 당선 확정 직후인 2012년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당시 광장에는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 자리에 선 박 당선인의 일성은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또 “국민 모두가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도 했다. 다음날 대국민 인사 자리에서도 당선인은 국민을 향해 “희망을 잃지 말고 일어서 달라”고 호소했다.

깊은 밤까지 광화문광장에 모여 있던 국민들은 큰 환호와 박수로 대답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통령직선제 재도입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최다 득표 당선인의 약속을 국민은 믿었던 것이다.

2년 전 겨울은 어땠을까. 당시는 정윤회씨의 이른바 ‘비선실세’ 논란이 정국을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라는 큰 슬픔을 추스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기이기도 했다.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전방위로 퍼지면서 박 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비난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공언했다. “실세는 없다. 진짜 실세가 있다면 그것은 청와대 진돗개”라고 한 것이다. 이어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은 또 믿었다.

박 대통령 당선 4주년을 맞는 2016년 12월. 국민행복시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지난 수개월간 국민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스캔들 속에서 극도의 좌절과 분노,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그 속에서 어떤 희망도, 행복도 얘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 행복을 공언했던 박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에 떠밀려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이 임기 4년도 채우지 못한 채 직무정지를 당하는 상황을 피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년 전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질 때 그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느꼈더라면, 또 아집과 불통 행태를 버리고 여론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직언은커녕 대통령 심기만 헤아리기 바빴던 청와대 참모들의 직무유기가 큰 이유였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박 대통령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얼마 전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에서 시늉뿐인 사과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죄를 했다면 역시 최악의 순간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부정하고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약속도 다시 한 번 저버리면서 박 대통령은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결국 국민은 속았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내 유달리 강조해 왔던 ‘원칙과 신뢰’의 국정철학은 이제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매일같이 ‘국민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고민한다던 대통령은 이제 국민에게 좌절과 절망, 분노만 안겼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른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배신한 데 대한 심판이다. 굴곡진 개인사에서 비롯된 쓰라린 경험 탓인지 정치인생 내내 ‘배신’을 그토록 증오해 왔던 박 대통령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그 늪에 빠져버린 셈이 됐다. 2012년 12월 박 대통령이 공언했던 광화문광장에서의 약속은 4년 만에 같은 장소 광화문광장에서 들불처럼 타오른 분노의 촛불로 다시 돌아왔다. 국민과의 약속은 구호나 사탕발림이 돼선 안 된다. 희망의 약속이 절망적 배신으로 돌아온 지금, 국민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