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 곡선 기사의 사진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잘 쓰는 게 좋은 글의 비결이라고 한다. 첫 문장으로 독자의 주목을 끌고 마지막 문장으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해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때 쉽게 잊을 수 없는 글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잘 쓴 대표적인 글 중 하나가 바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이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 한때 금서로 지정되었던 공산당 선언을 인용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효율이나 능률 복음을 전파하면서 모든 걸 빨리 처리하는 게 최고의 선(善)인 것처럼 주장해온 성급한 직선주의의 폐해를 공산당 선언에 비추어 재진술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는 촉급한 직선에서 벗어나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 곡선의 의미와 가치에 비추어 공산당 선언을 ‘곡선당 선언’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의 유령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직선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능률 복음과 성과주의 유령을 척결하기 위해 고속으로 질주하며 지친 모든 직장동맹들과 신성불가침 계약을 체결했다. 곡선의 아름다움과 의미심장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물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난받지 않은 곡선당이 어디 있는가?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인간은 불행해졌다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곡선 예찬론자들에게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며 대책 없이 쏘아대는 비난의 화살을 맞아본 적이 없는 곡선당이 어디 있는가? 직선 패러다임에 젖어 아직도 속도전을 부르짖는 직선주의자들로 하여금 곡선주의 혁명 앞에 전율하게 하라! 곡선주의 혁명 앞에서 잃은 것은 직선으로 물든 폐해뿐이요, 얻을 것은 곡선으로 다시 찾은 행복뿐이다. 온 세상의 곡선당원이여, 단결하여 곡선으로 승부하라!”

‘속도’는 남과의 경쟁이지만 ‘밀도’는 자신과의 경쟁이다. 밀도는 삶의 매순간 느끼는 행복감이다. ‘속도’가 빨라지면 ‘각도’가 줄어들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속도를 줄이고 밀도를 늘려야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려면 곡선의 물음표를 던져 직선의 느낌표를 만나야 한다. 곡선의 ‘물음표’를 사랑해야 직선의 ‘느낌표’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져 어디로 왜 달려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빨리 습득한 지식은 나만의 지혜로 체화되기 어렵다. 금방 써먹을 수 있는 ‘기법’은 쉽게 개발할 수 있지만 모든 실력의 기반이 되는 ‘기본’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손쉬운 ‘기법’에 물들지 말고 힘들지만 튼실한 ‘기본’에 충실해야 오래간다. 직선적 삶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빨리 가는 기법 개발에 몰두하지만 곡선적 삶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모든 순간을 의미 있는 삶의 기본으로 생각한다. 매순간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곡선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보다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삶이 우리가 지켜나가야 될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직선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실패는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반면에 곡선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실패는 자신을 냉철하게 반성해보고 색다른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실패가 없는 직선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어제와 다른 ‘실패’가 어제와 다른 ‘실력’을 쌓아주는 원동력이다. 문제가 되는 실패는 어제와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는데 있다.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색다른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이 어제와 다른 도전을 즐기면서 인생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다. 직선형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실패는 곧 그 일의 끝이다. 즉 End는 끝장이다. 반면에 곡선형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End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AND다. 모든 끝은 영원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끝으로 가는 시작일 뿐이다. 끄트머리라는 말도 끝에 머리, 즉 시작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끝은 어제와 다른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어제와 다른 끝을 맺으려면 끝에서 이전과 다르게 시작해야 한다.

곧 다가올 올해 끝, 연말(年末)에서 연초(年初)가 시작된다. 비록 올해가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한 해가 되지 못했어도 올해와 다른 내년을 꿈꿀 수 있는 연초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유영만 교육공학과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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