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피눈물 기사의 사진
눈 아래 다크서클이 심하면 성형외과에서 눈밑지방재배치수술을 권하곤 한다. 피부가 탄력을 잃은 부위에 눈가 지방을 옮겨 채우는데, 수술 뒤 간혹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눈꺼풀 안쪽의 결막을 절개한 부위에서 실핏줄이 터져 피가 약간의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런 의학적 상황을 제외하면 사람이 실제 피눈물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굉장히 익숙한 것은 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눈물만으론 표현하기 어려운 고도의 감정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됐다. 숙소였던 관풍헌의 누각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종종 시를 읊었다. 소쩍새를 노래한 ‘자규시’에 피눈물이 등장한다.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을 나온 후로/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소쩍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이 흘러서 지는 꽃이 붉구나.’ 피눈물에 실린 감정은 당시 단종의 처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숙부에게 배신당해 서인(庶人)으로 강등됐고, 성삼문 등 충신 6명은 처형됐으며, 아내 정순왕후를 두고 떠나온 한양에선 “자결하라”는 숙부의 메시지가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흔히 쓰는 ‘완벽(完璧)’이란 말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피눈물이 있다. 중국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는 형산에서 발견한 옥돌을 왕에게 헌상했다가 왼발이 잘렸다. 돌덩이에 불과하다는 옥장이의 잘못된 감정(鑑定) 탓에 벌을 받았다. 왕이 죽고 다음 왕에게 다시 헌상했는데 이번에도 돌덩이로 몰려 오른발이 잘렸다. 그 다음 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옥돌을 안고 초산 밑에서 사흘 밤낮을 울었다. 눈물이 말라 나중엔 피눈물이 흘렀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왕이 옥돌을 가져다 다듬게 하니 천혜의 보석이 됐다. 왕은 이 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불렀고, 후에 흠집 하나 없이 온전하다는 뜻의 완벽이란 말이 파생됐다.

각각 고통과 비애를 뜻하는 피와 눈물이 피눈물로 합쳐진 감정은 단종과 변화가 공통적으로 느낀 무엇일 텐데, 그것은 억울함이다. 정당하게 계승한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앞두게 된 억울함, 분명히 보석을 바쳤는데 두 발이 잘린 억울함. 이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피눈물, 세월호 유가족의 피눈물에도 담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뒤 “피눈물이 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황스럽다.

태원준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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