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권력서열 기사의 사진
일선 기자 시절, 한 나라의 권력서열 기사를 쓴 경우는 북한이 유일했다. 노동당 대회나 거물급 장례식에서 발표된 주석단 서열이었다. 김정일(지금은 김정은)이 맨 먼저 호칭됐고 이후 나오는 이름이 권력서열이었다. 국제부 데스크 때는 중국의 권력서열이 담긴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명단이 관심사였다. 현재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1, 2위다. 권력서열을 따지는 나라는 독재국가 또는 사회주의국가가 대부분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지도자가 선출되는 나라는 권력서열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난데없이 권력서열이 회자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권력이 센 사람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논란’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한 박관천 경정은 검찰에서 “대한민국 권력서열은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고 했다. 2년 전, 그 말을 믿는 국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믿게 됐다. 며칠 전 최순실씨와 같이 일한 차은택씨가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권력서열 질문에 “최씨와 박 대통령은 거의 같은 급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측근이었던 고영태씨도 박 경정의 권력서열 평가에 “동의한다”고 했다. 전 청와대 조리장은 인터뷰에서 “최씨가 대통령 위에 있는 사람으로 짐작했다”고 가세했다.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권력서열이란 말이 없다. 대신 국가의전서열이라는 게 있다. 1위 대통령, 2위 국회의장, 3위 대법원장 등이다. 행정부는 유고 또는 탄핵 때 권한을 넘겨받는 순서가 있다. 대통령→국무총리→경제부총리 등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자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이 된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는 권력서열이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난다. 제대로 된 나라에서 보면 대한민국이 참 많이 한심해보일 것 같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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