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대통령과 거짓말 기사의 사진
대형 의혹 사건을 일컫는 ‘게이트’는 거짓말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인 최순실 게이트를 경험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태블릿PC에 담긴 내용이 보도된 데서 비롯돼 급기야 나라를 흔든 게이트로 비화된 일련의 흐름에는 어김없이 거짓말이 있었다. 거짓말은 지위, 명예, 체면, 학벌 따위를 단번에 삼켰고 윤리, 도덕은 물론 파장, 후폭풍 정도는 쉽게 무시했다. 그러나 거짓말은 내뱉어진 대로 그냥 있지도, 의도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국면을 바꾸는 변곡점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것도 결국 거짓말이었다.

나는 거짓말의 중심에 박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다. 분노는 순간이었지만 슬픔은 긴 여운의 서글픔을 생성했다. 생중계되는 TV 앞에서 국민에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 성정의 바탕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자괴감이 쌓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나는 박 후보가 당선돼서는 안 되는 이유로 ‘무지’를 꼽았다. 이제 바뀌었다. 그는 ‘후안무치’ 하나만으로도 대통령감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결백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늘 올곧은 윤리교사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질에 ‘정직’이 최상위에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부재’해서는 안 된다. 닉슨을 현직 미국 대통령에서 끌어내린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의 거짓말이었지 않나.

닉슨과 박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거짓말로 곤경에 처했다는 것은 물론이고 닉슨에게도 ‘문고리 3인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서실장 홀드만, 민정수석 에릭만, 수석 행정관 버터필드 3인은 ‘베를린 장벽’으로 불리며 닉슨을 독점했다. 평행이론을 맞닥뜨린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거짓말은 나비효과를 낳았다. 게이트의 주범과 공범자들은 거짓말 경연대회를 방불케 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청문회 증인들의 거짓말 판별법까지 내놓았다. 최순실,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여당 대표, 차관, 전경련 부회장, 이화여대 관계자 등은 준비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TV 화면에 이전에 공언한 발언이 반복 재생됨에도 ‘장 지지는 손’을 부인한 여당 대표는 이미 조롱의 대상이 됐고, 방자한 태도로 국회의원을 대했던 전경련 부회장은 세상이 바뀌자 보기 민망할 정도로 몸을 낮췄다.

거짓말의 해악은 반사회성의 전염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반사회적 장애의 폐해는 크다. 사표로 여겼던 인사들이 서슴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 후 청소년들이 주 독자층인 박 대통령의 위인전 출간이 상당수 중단되거나 폐기됐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뒤늦게 청문회 불출석과 위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대통령의 거짓말이 목격되는 현실에서 법의 칼날이 날카로워진다고 ‘거짓말 공화국’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도층의 거짓말은 여론에 의해 사회적 지위를 말살시키는 ‘사회적 사형’이 해법이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는 탄핵 사유 중 헌법 위반이 명백해 보이는 일부를 근거로 탄핵 심판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12일 밝혔다. 결정까지 일정이 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률문외한인 내가 볼 때는 거짓말 하나만으로도 위중하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도 여전히 재기의 기회가 있는 대한민국, 좋은 나라인가 나쁜 나라인가.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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