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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손영옥] ‘노태강 방지법’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아주 나쁜 사람’으로 지목한 공무원, 제도 보완해 부당한 좌천이나 사직 구제해야

[내일을 열며-손영옥] ‘노태강 방지법’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인물 정보를 검색했다. ‘전 공무원’. 노태강이라는 이름 옆에 붙은 직업 설명은 이랬다. ‘전(前)’이라는 단어가 아연 낯설게 다가왔다. 이 한 자에 나락의 사연이 있다. 행시 27회 공무원이던 그는 어느 날 공직에서 ‘쫓겨난’ 것이다. 공무원과 전 공무원 사이에 대한민국의 퇴행적 초상이 있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일개 사인을 위해 남용한 국정농단의 드라마가 있다.

새삼 이름을 검색한 건 국립중앙박물관 사람들과 담소하다가 그가 화제에 올라서였다. 그는 좌천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와 있다 옷을 벗었다. 학예사 A씨는 상사인 그가 병풍처럼 막아줘 전시를 잘하게 된 경험이 몇 번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른 이는 체육 행정에 무척 애정이 많아보였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태우정부 시절 체육청소년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체육 행정으로 잔뼈가 굵었다고 한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봄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관련된 승마대회 판정 시비에 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올렸다. 그는 지난 7일 최순실 국조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당시 여러 소문과 주의하란 말이 있었지만 사실 자체는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우직해보였다. 그게 치명적 흠결이 된 셈이다. 그래서 대통령으로부터 “아주 나쁜 사람”으로 지목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유배 보내졌을 것이다. 여기서도 편안하지 못했다. 올해 초 프랑스 장식미술전 문제로 청와대와 중앙박물관이 갈등을 빚을 때 또 대통령 눈에 띄었다. 결국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는 한마디에 민간인이 됐다. ‘부관참시’다. 그날 2차 청문회 때 우리는 이 나라 공무원의 민낯을 봤다. 노태강 전 국장은 “공무원으로서 대통령한테 지적받는 것은 상당히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용감, 대담하게 이 문제를 직시했다면…” 하는 회한도 내비쳤다.

또 다른 ‘전 공무원’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그는 태도가 좀 달랐다. 대통령의 지시로 이미경 CJ 부회장에 대해 사퇴 압박을 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님의 뜻은 제가 아니라도 전달될 수밖에 없었고 제가 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있어 보신 분은 알겠지만 대통령 지시에는 토를 달기 힘들다”고 했다.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에도 총대를 메야 하는 것인가. 자신들을 ‘전문 기술자’로 규정하는 이 나라 엘리트 관료들을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실팍한 뼈대를 이루는 얄팍한 수재들’(‘광장’ 최인훈)이라고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항명 파동의 주인공 ‘권은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혼 없는 공무원’은 개인의 자질과 철학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누구라도 항변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촛불의 힘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에 더 큰 과제가 남아있다. 제2의 최순실 게이트의 방지가 핵심이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 답이 될 수 있겠지만, 또한 헌법에 보장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 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와 국가 이익이 충돌할 때 ‘토를 달기 힘들다’는 대통령의 지시는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가. 정책이 잘못되면 피해는 그대로 국민에게 간다. 그래서 노태강으로 상징되는 공직자의 부당한 좌천이나 사직은 구제돼야 한다. 현행법으로 안 되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노태강 방지법’이 마련돼야 한다. 공무원의 길이 대한민국의 길이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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