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보통 사람 기사의 사진
딱 29년 전이다. 1987년 12월 16일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0월 29일 ‘체육관 관선제’에서 5년 직선 단임제로 개정된 헌법이 공포된 이후 50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6월 항쟁의 민심이 왜곡되는 순간이었다.

그해 1월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종철씨 사망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에 이어 이한열씨 최루탄 사망 사건은 100만명을 6월 항쟁에 뛰어들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 선언으로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력욕에 눈먼 야권 후보들은 분열했다. 6월 항쟁의 민심은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고 유세하던 그에게 대통령직을 안겨줬다. 대통령 직선제 그 이후를 고민하지 않았던 ‘미완의 혁명’이 안겨준 아픔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시민들이 붙여준 ‘물태우’라는 별명 뒤에 숨어 최순실 게이트의 선례를 만들었다. 최씨와 비슷한 비선도 존재했다. 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동생 박철언 전 의원은 ‘6공화국 황태자’로 군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안전가옥으로 재벌 총수들을 불러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걷었다. 그는 이후 비자금 사건 재판에서 ‘선의의 정치 자금’이라고 했으니 박근혜 대통령에겐 대응 교본이 된 셈인가. 그는 95년 구속돼 2년여를 복역한 뒤 특별사면됐다.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모든 예우가 박탈된 채 아픈 말년을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채 청와대에서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 결정과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선 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위기에 처해 있다.

29년 전 ‘한발만 더 나아갔더라면’ 하는 후회는 소용없다. 6·10항쟁의 뜨거운 함성에 230만개의 촛불을 얹을 때다. 박 대통령 탄핵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시스템 변화까지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9년 뒤 우리 후손들이 ‘제2의 보통 사람’ ‘제2의 박근혜’를 만나는 불행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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