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경제가 정치의 발목을 잡는 날엔… 기사의 사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하나같이 “이제는 경제를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예사롭지 않고, 자칫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굳이 수치로 제시하지 않더라도 수출, 생산,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는 모두 악화일로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소비심리도 엉망이다. 내년 성장률 3%는 언감생심, 잘해야 2%대다. 노무라증권은 심지어 1.5%를 제시하고 있다. 성장률 하락은 경제체력을 급격히 고갈시킨다. 미국은 금리를 올렸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환율전쟁은 우리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더욱이 일본 태도가 꺼림칙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도와 달라”는 우리의 요청을 냉정하게 뿌리쳤던 일본은 사실상 한·일 스와프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한국에 빌려준 돈 잘 챙기라”며 자국 은행권에 경고를 보냈다. 지난달 국내시장을 빠져나간 외자는 3조원에 육박한다. 외환보유액은 총액 측면에서는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가 현실화되면 봇물 터지듯 급감할 수 있다.

폐족(廢族)이나 다름없는 여당은 친박비박이 서로 삿대질을 해댄다. 자칭 헌법기관이라고 강조해온 그들의 언행을 보면 시정잡배 수준이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국에 할퀴고 물어뜯고, 저잣거리에서나 나올 만한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다. ‘존경하는 ○○○ 의원님’은 그들끼리의 언어일 뿐이다. 이별의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불쾌할지 모르나 먼지 쌓인 난파선에서 살기 위해 눈치 보며 바쁘게 오가는 생쥐들처럼….

야당도 마찬가지다. 광장의 촛불에 슬쩍 무임승차한 그들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리멸렬이다. 대권 후보라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도 영 미덥지 않다. 대권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조바심을 냈다간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제1야당 의총에서 “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우리가 X바가지 뒤집어쓸 필요 있나”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단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과연 수권을 꿈꾸는 정당이 맞는지, 이런 정당에 국가경영을 맡겨도 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쯤 되면 나라경제는 안중에도 없다. 입으로는 경제를 걱정하지만 행동은 딴판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정치인도 수입하자’라는 자조마저 나올까.

사정이 이러니 언제, 어떤 형태로 위기가 현실화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격랑의 파도 속에 휘청거리던 한국호(號) 선장이 정해졌고, 정치권도 경제가 위기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작일 뿐이다. 인식이 같다는 것일 뿐 진단과 처방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협의체는 출범은커녕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여야는 물론이고, 야당끼리도 속내가 다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니 각자 주판알만 튕긴다. 겉으로는 경제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목소리, 한 몸으로 대응해도 버거울 판에 다른 목소리, 다른 행동을 보이니 그 결과는 뻔하다.

늦었지만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아직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가 원인이라면 이는 우리끼리 문제로, 해결의 열쇠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엔? 즉 경제가 정치의 발목을 잡게 되는 단계에 이르면 끔찍하다. 그땐 모든 것들이 뒤틀린다.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지만 해결책은 우리에게 없다.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들고 후회한들 소용없다. 경제정책엔 때가 있다. 때를 놓친 정책은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다. 누가 집권세력이 되든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고, 집권 내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흘려야 하는 피눈물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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