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우리가 ‘다니엘 블레이크’다 기사의 사진
#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청와대의 대응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24분 전남 진도 앞바다. 이미 45도 기운 세월호는 가라앉고 있었다. 긴급사항을 보고해야 할 청와대 안보실장은 대통령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집무실에 있는지 관저에 있는지도 몰랐다. 일단 서면으로 보고하긴 했는데 대통령이 보고받았는지 여부는 확인 못했다. 지난주 청문회 때 밝혀진 일이다. 본인이 보고한 걸 2년 반이 지나도록 상대가 받았는지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후 3시, 뒤집힌 배를 보며 전 국민의 가슴이 타들어갈 때 대통령은 전혀 딴 세상에 있었다. 그는 머리손질을 하기 위해 미용사를 불렀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을 살릴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그날 청와대에 있던 누구도 대통령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그날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 아니었다. 자격이 없었다. 골든타임을 대통령의 사생활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 아무리 생각해도 관공서의 대응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꽉 막힌 관료주의가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의 삶을 꺾었다. 최근 개봉한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야기다.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추락사할 뻔한다. 의사의 권유대로 일을 그만두었지만 정부의 질병수당 대상에선 탈락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고용센터를 찾아가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모든 신청은 인터넷으로 해야 하는데 평생 마우스 한 번 안 잡아본 그에겐 집 한 채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상담원과 전화 연결에 축구경기보다 긴 1시간48분이 걸리고, 천신만고 끝에 신청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컴퓨터 화면에는 에러 표시가 뜬다. 속이 터진다.

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원칙과 시스템을 지키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차라리 죽으라는 말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다니엘의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린다. 그는 이런 글을 남긴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다니엘이 마주한 영국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평생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아 왔다.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다. 그런데 다니엘처럼 법을 지키며 조용히 저 할 일을 하던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도무지 나아질 전망이 안 보이는 경제,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사회. 국민들은 그 속에서 좌절했고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우리에게 힘이 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 다니엘이 비슷한 처지의 이웃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위로한 것처럼 우리도 광화문에 모인 많은 이들을 보며 서로 힘을 얻었다. 그가 관공서 벽에 최후의 수단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죽기 전에 항고 배정을 요구한다’고 쓴 것처럼 우리는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외치고 있다. “즉각 퇴진하라”고.

여든 살의 켄 로치 감독은 올해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2016년이 저물어간다. 공직에 있으면서 저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내년에는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말대로 우리에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반드시 와야 한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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