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한신갑] 폭설주의보 기사의 사진
기상관측 100년 이래 최대였다던 2004년 중부지방 폭설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재산피해액이 6700억원을 넘어섰고, 이재민도 수만 명에 달했다. 여기에 교통과 물류 차질 등 간접 피해까지 더하면 흰 눈을 바라보며 연상하는 낭만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자동차들을 길에 가두고, 공항을 닫게 하고, 건물을 주저앉힌다. 하나하나 볼 때는 가볍고 폭신하기까지 한 눈송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힘이다. 눈이 그치고 나도 쌓였던 눈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2차 피해를 낸다. 이런 측면은 내리는 눈의 양에 초점을 맞춘 ‘대설’이란 말보다는 그 눈이 얼마나 시간적, 공간적으로 집중해 내리는가에 초점을 둔 ‘폭설’이라는 말로 더 잘 표현되는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토요일 저녁마다 광화문에서 있었던 일의 경과를 보며 여러 면에서 폭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모인 사람 수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그동안 큰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던 ‘주최 측’ 추산과 ‘경찰 측’ 추산의 격차에 대해 날 선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곧 숫자 자체의 정확성에 관한 것에서 매주 계속되는 그 엄청난 규모가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것으로 논의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임계점이 어딘지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양(量)적인 증가에서 질(質)적인 변화에 대한 것으로 사태의 엄중함을 논의하는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경우다. 첨단 기법을 사용한 새로운 추산 방법들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중·고교 때 배운 인구밀도 개념이 얼핏 언급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이 밀도로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것도 학교에서 배웠었다. 설사 그걸 잊었다 해도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빈 손잡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주말 백화점에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채 문만 열렸다 지나치는 엘리베이터를 보내며, 자주 또 생생하게 작은 규모의 밀도효과를 겪으며 산다.

추위를 무릅쓰고 광화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것과 형식에 있어서의 구조는 같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차원이 다른 밀도를, 그리고 그 밀도가 만들어내는 힘을 직접 느꼈을 것이다. TV나 신문을 통해 중계된 현장을 한 발 떨어져서 본 사람도 일차적으로는 모인 사람들의, 또 그들이 들고 있던 촛불의 밀도를 보았을 것이다. 이십오만인지, 백만인지, 백오십만인지는 이렇게 보고 느낀 밀도를 모아 총량을 나타내기 위해 구한 숫자다. 이 총량을 생각하면 매주 토요일 도시 하나가 만들어졌다 사라지곤 한 셈이다. 세종시 인구가 이십오만명, 울산시가 백만명, 광주시가 백오십만명이니 숫자를 크게 잡든 작게 잡든 어마어마한 일이고, 기적 같은 일이다. 아니 기적이다. 그리고 이 기적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사안과 규모는 달랐지만 2002년 효순이·미선이 때나 2004년 탄핵 때, 2008년 광우병 때도 이렇게 크고 작은 도시들이 만들어졌고 사라졌다.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2002년 월드컵 때는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진 도시가 만들어졌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도 아니어서 어디에선 오렌지색 도시가, 다른 곳에선 재스민꽃빛 도시가 만들어졌었다. 이 경우들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의 밀도와 규모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이다. 이렇게만 보면 밀도가 높을수록, 규모가 클수록 좋다.

2010년 중부지역 폭설 때 기상청은 한 가지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당시 서울과 인천, 경기도, 강원도 지역에 내린 눈이 8300억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고 추정했다. 폭설의 파괴력과 피해만을 본 것이 아니라 가뭄피해 경감과 수자원 확보에서 대기질 개선, 산불 방지에 이르기까지 눈이 가지는 긍정적인 가치도 본 것이다.

이런 양면성을 생각하면 꼭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 흩어지는 음악팬들이나 경기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는 야구팬들, 날이 좋아지면 녹아내리는 눈더미처럼 이 도시를 만들었던 에너지를 그냥 흩어져 사라지게 둘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담고 모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드는 것이 조직과 제도이고, 그런 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사람이 지도자다. 특히 대의정치에서 이런 것들이 제대로 구색을 갖추고 짜여 국민의 뜻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는 경우 그것을 ‘정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이 도시를 몇 번이나 다시 세우면서 겪고 느낀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튼튼한 댐도, 제대로 놓인 용수로(用水路)도 없는 것 같다는 아쉬움, 안타까움, 아픔이다. 겨울 가뭄이 있을 때마다 하늘만 쳐다볼 수는 없다. 그리고 폭설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오게 할 수 없다.

한신갑(서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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