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키친 캐비닛 기사의 사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에 자신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최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부엌내각)의 멤버로 임명해 얘깃거리가 됐었다. 대통령과 허물없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공식적 여론전달 창구, 조언자라는 의미다. 1830년대 당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내각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장관들을 해임해 버렸다. 그러고는 측근들과 따로 모여 주요 국정을 논의했다고 한다. 반대파가 이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비아냥댄 데서 유래됐다. 여기에 빗대 공식 내각은 ‘팔러 캐비닛(parlor cabinet·거실내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재미있다. 미국 가정에서 보통 손님은 거실에서 공식적으로 마주하지만, 아주 친밀한 친구는 부엌까지 들어와 음식이나 술도 같이 준비하고 즐기면서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키친 캐비닛을 말한 적이 있다. 2004년 청와대 관저로 주로 여당 인사들을 불러 식사를 하며 의견교환을 하곤 했다. 야권이 비판했다. 그러자 자신과 비슷하게 학력이 낮고 독학 변호사이며 첫 서부 비주류 출신 대통령이었던 잭슨의 키친 캐비닛을 언급하며, 식사를 매개로 한 소통의 차원으로 봐 달라고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리인을 통한 국회 탄핵소추 답변서에서 최순실에게 공무상비밀누설을 하지 않았다고 전부 부인했다. 그러면서 “일부 표현에 관해 주변 의견을 청취한 것에 불과”한 데다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 눈높이에서 딱딱하게 들리는지 현실과 맞지 않는지에 대해 주변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속칭 ‘kitchen cabinet’이라고 한다)”고 썼다. 국민 눈높이와 도저히 맞지 않는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 어찌 이런 답변이 나오는지…. 키친 캐비닛은 기업 상대로 강제 모금하고, 청와대 비서관들을 부리며, 사적 이익을 취하고, 대학 부정입학까지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 3년간 매주 한 번꼴로 프로포폴을 맞고 피부미용·마사지를 130회나 받으면서 8000만원을 쓴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단다.

논리정연하고 수준 있는 탄핵소추 공방을 한편으론 기대했었다. 분노를 걷어내고 냉정하게 보게 되면 이 다툼은 결과적으로 대통령 행위의 준거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역사적·정치적 기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26쪽짜리 답변서를 꼼꼼히 읽어보니 기대난망이다. 키친 캐비닛, 정말 블랙코미디다.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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