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조선의 史官, 안종범의 수첩 기사의 사진
서울대 중문과 허성도 명예교수의 몇 해 전 강연은 인터넷에 전문이 돌아다닐 만큼 회자됐다. 중국어 문법을 연구했고 45년째 ‘맹자’를 읽고 있는 학자인데, 강연 주제는 ‘우리 역사 다시 보기’였다. 학교에선 조선이 500년 만에 망한 이유로 사색당쟁 쇄국정책 반상제도 등을 가르치지만, 동시대에 500년을 버틴 단일왕조(제국을 제외한)는 동서양에 사실상 조선뿐이었으니 ‘500년이나 지탱한 이유’를 찾는 게 합당하다고 그는 말한다. 허 교수가 꼽은 조선왕조 500년의 비결은 ‘기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6400만자가 적혀 있다.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읽으면 11년이 걸리는 분량. 그의 강연을 들어보자.

“여기에 왕이 있으면 바로 곁에 사관(史官)이 있습니다. 왕이 아침에 출근하면 젊은 사관이 달라붙습니다. 왕이 하는 말을 다 적고,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화장실에 가면 언제 갔다고 적습니다.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시는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인조(仁祖)는 사관이 쫓아다니는 게 싫어서 하루는 대신들과 회의하는 장소를 살짝 바꿨습니다. 사관이 지필묵 싸들고 찾아다니다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여기는 공식 장소가 아니지 않느냐’ 하니까 사관이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 사관이 있게 돼 있습니다’ 하고는 적었습니다. 괘씸해서 귀향을 보냈더니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그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우리는 400년 전 인조가 일개 사관과 티격태격한 것은 알고 있지만, 불과 2년 전 세월호가 침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왕을 기록한 조선은 500년을 갔고, 박근혜정부는 5년을 버티지 못했다. 기록은 그 대상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CCTV가 있는 곳에선 행동을 조심하게 되듯,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된 조선의 왕은 조심하느라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 불편을 감수했기에 500년이나 지속됐다는 것인데, 이런 실록을 물려받은 대한민국 청와대는 무엇을 기록했나. 아주 치밀한 기록이 발견됐다. 안종범 경제수석이 박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깨알같이 적은 수첩은 17권이나 된다. 정호성 비서관은 파일 236개 분량을 녹음했다. 총리와 장관들이 국무회의에서 받아쓴 노트도 상당한 양일 테다. 모두 대통령을 편하게 해주려는 기록이었다. 권력자를 조심하게 만드는 기록의 부재(不在),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원인은 여기에 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는 일관된 경제정책 운용에 꼭 필요하다. 경제 각 분야 수장이 모여 현안을 점검하는 자리인데, 이 정부에서 부실의 출처로 전락한 건 회의록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승정원은 청와대 비서실 역할을 했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 왕의 하명서, 왕이 참고할 제언서를 놓고 매일 회의를 했다. 이 회의를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 288년치가 남아 있고, 그 분량만 2억5000만자나 된다. 이런 기록의 감시와 견제가 제거된 청와대 회의는 세계 최고 수준이던 조선과 해운의 몰락을 불렀다.

기록하는 정부는 투명한 정부를 뜻한다. 사람이 바뀐다고 정부가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가 하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왕이 하라 해서 만들었던가. 왕도 어쩌지 못해 만들어진 거였다. 600년 전 경국대전이 구축했던 제도를 21세기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개헌을 해서, 어렵다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등 법률을 정비하고 신설해서라도 투명성 장치를 구석구석 갖춰야 한다. 지도자 노릇이 조심스럽고 불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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