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연좌제 기사의 사진
범죄자의 친족에게 형사책임을 함께 지우는 연좌제(緣坐制)는 인류의 역사만큼 연원이 오래됐다. 공동체 지배 원리가 통용되던 고대사회부터 비롯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성행했다. 사극에서 흔히 듣는 ‘삼족을 멸한다’는 대표적인 연좌제다.

반인륜적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 제도는 근대국가 체제를 받아들였던 갑오경장(1894년) 때 폐지됐으나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7월 반공법이 제정되면서 부활됐다. 군사정권은 좌익사범을 대대적으로 검거했고 이는 연좌제 재등장의 신호탄이었다. 연좌제의 위력(?)은 60, 70년대 절정에 달했다. 여기에 걸려 공직진출 제한 등 삶이 옥죄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는 81년 연좌제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상당수 국민들에겐 공포가 여전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 전력을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라는 노 후보의 연설은 오히려 큰 반향을 불렀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연행자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가족의 범죄경력까지 조회했다.

연좌제의 상흔은 문학에서 특히 잘 확인된다. 이문열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서사’로 꼽은 소설 ‘변경’에서 부친의 월북으로 빈핍한 생활을 한 3남매를 그렸다. 이념의 피해자로 평생 짓눌려 살아온 본인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다. 최인훈은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훈을 통해 월북한 아버지로부터 생겨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묘사했다.

귀를 의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 ‘최순실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는 것은 연좌제’라고 항변했다. 연좌제는 한이 담긴 단어다. 그 말에는 회한과 슬픔이 녹아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나 싶다. 연좌제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공고히 활용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연좌제의 피해자라니. 역설을 넘어 코미디다.

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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