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세욱] 최순실 때문에 평창 미워해서야 기사의 사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의 뜻을 결집해 진행시켜야 할 각종 국가대계(大計)에 엄청난 타격을 안겼다는 점에서 역대 어느 권력형 비리보다 악성이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등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콘셉트들의 가치가 농락당했다. 직격탄을 맞은 또 하나가 바로 약 14개월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요즘 여러 매체의 스포츠 기자들을 만나다보면 “평창올림픽 기사 쓰기 두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올림픽과 관련한 기사를 쓸 때마다 최순실을 연결시킨 악플이 쏟아져서다. 엄밀히 보면 평창올림픽은 최순실 일당이 농단을 부리려다 미수에 그친 분야다. 하지만 그들의 손길이 조금이라도 미쳤다는 이유로 ‘순실림픽’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일부 금융권과 공기업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한 후원을 미루고 있다. 올림픽 담당 부처는 “다른 부서로 옮겨 달라”는 직원들의 민원을 심심찮게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체육인의 잔치이자 공정한 땀의 결과를 맛볼 올림픽이 정치 요인으로 추락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지난 17일 올림픽이 열릴 현장인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찾았다. 많은 스키어들이 아침 일찍부터 즐기고 있는 보광 휘닉스파크.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가 열릴 이곳은 깎아 지르는 듯한 경기 슬로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보광 관계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들이 시설과 준비상황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후에 방문한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는 올림픽을 1년 앞둔 테스트 행사로 쇼트트랙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다. 1만여 관중이 좌석을 빼곡히 메우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막간을 이용해 관중이 ‘I♡ SKATING’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상당수가 강원도민인 이들의 올림픽 성공 개최에 대한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우려와 달리 현장에서의 올림픽맞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도 개최 전까지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1년 전에는 정권 퇴진을 위한 6월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88년 3월 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5공화국의 부도덕성이 잇달아 드러났다. 대학생들은 올림픽 남북공동개최 투쟁을 벌였다. 올림픽을 유치한 전 전 대통령은 관중의 야유가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에 개막식 참석을 포기했다. 그해 총선은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지금과 상황이 놀랍도록 유사하다.

위기 속에 치러진 서울올림픽은 그러나 가난한 분단국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가져와 경제, 외교 등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이뤄냈다. 심지어 전두환정권에 저항했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자서전 ‘장정’에서 “(올림픽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재확인하면서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신감을 만끽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영화 ‘넘버3’에서 마동팔 검사(최민식)는 조직폭력배 서태주(한석규)에게 이같이 말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X같아 하는 말이 뭔 줄 아냐.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X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말 그대로 인간(최순실)이 밉지 인간이 저지른 죄로 오염될 뻔한 평창올림픽을 미워할 순 없다.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 대응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최순실 사태로 조롱거리가 된 국가와 국민의 위상 회복을 위해서라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가 필요하다. 그나마 88년과 달리 (탄핵된) 대통령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 논란 여지가 없다는 것은 위안거리 아닐까.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함께 떠내려 보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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