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TK 자민련의 미래 기사의 사진
새누리당 친박계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다. 비박계를 향해 ‘바람난 배우자’라며 나갈 테면 나가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비박계 의원 30여명이 탈당할 경우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석이 무너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년 1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귀국을 계기로 2차 탈당 바람이 불 경우 ‘골박당(골수 친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친박계 주변에선 ‘TK(대구·경북) 자민련’을 자주 얘기한다. 과거 자민련처럼 어떤 식으로든 계파 명맥을 유지하면 미래를 도모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구상 모델인 자민련의 중심에는 김종필(JP) 전 총리가 있었다. JP는 ‘2선 후퇴’를 요구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맞서 1995년 3월 의원 9명과 함께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대전·충남·충북 등 텃밭인 충청권은 물론이고 대구시장과 강원도지사까지 휩쓸었다. 이듬해인 96년 4월 15대 총선에선 50석을 차지하며 제3당에 등극했다. 97년 12월 대선에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극적인 ‘DJP 연합’을 이뤄내며 일등 공신의 자격으로 총리에까지 올랐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에 3석이 모자란 17석을 획득했지만 새천년민주당은 ‘의원 꿔주기’를 통해 자민련의 명맥을 이어주기까지 했다.

친박계의 ‘TK 자민련’ 구상은 나름 근거가 있긴 하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했던 자민련처럼 TK라는 확고한 지역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30%대의 지지율을 회복하며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1위를 탈환한 점을 내세운다. TK 지역에서 탈당을 선언한 비박계 의원은 2명에 불과했다. 보수 정치의 명맥을 유지해 온 새누리당 간판을 계속 보유하게 된다는 강점도 있다. 대선 정국에서 개헌을 매개로 정치적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고, 보수의 기치 아래 비박계와 다시 뭉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있다.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 ‘골박 야당’으로 남아 생존하겠다는 계산도 담겨 있다.

친박계의 바람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친박계는 자민련과 질적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일단 맹주가 없다. 자민련에는 ‘정치 9단’ JP라는 거물이 있었지만,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울타리를 잃어버렸다. 자민련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컸던 민심으로부터 힘을 받았지만, 친박계는 지지 기반인 보수층마저 등을 돌렸다. 특히 비박계의 탈당으로 TK 지역 민심도 안심할 수 없다.

‘TK 자민련’ 구상의 최대 약점은 확실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사실이다. 친박계가 공들여왔던 반 총장조차 등을 돌렸다. 대선 후보가 없는 정당의 미래는 자민련의 역사가 잘 말해준다. 2002년 대선에 후보를 내지 못했던 자민련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4석에 그치며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JP마저 낙선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2006년 2월 한나라당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는 ‘불임 정당’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정당과 계파가 생존을 모색하는 것은 필연적인 몸부림이다. 그러나 320만개의 촛불은 친박계에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친박계의 ‘TK 자민련’ 구상은 자신만 살고 보자는 사이비 보수의 탐욕인 것이다. 친박계가 스스로 ‘친박’ 타이틀을 버려야만 미래를 기약할 희망이 생긴다. 뼈를 깎는 자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이미 역사에 큰 죄를 진 친박계의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린다면 보수층의 미래는 암울하다. ‘TK 자민련’ 구상이 내년 대선 혹은 3년여 뒤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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