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그건 사랑이었네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각본 없는 막장 드라마에 지친 독자를 위해 쉬어가는 코너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바꿔 말해야 할진 모르겠다. 절충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두자. 애매할 땐 다 집어넣으면 된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사랑의 크기에 몰두할 뿐 사랑의 무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날 얼마나 사랑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저 ‘얼마나’가 크기를 뜻하는지 무게를 뜻하는지 되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사랑의 크기를 애써 설명하게 된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좋을까. “하늘만큼 땅만큼.” 아무리 비웃어도 저 질문엔 이만한 대답이 없다. 사랑을 확인하는 모든 대답은 어디까지나 ‘하늘만큼 땅만큼’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저 바다에 던졌을 때 영원히 가라앉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정도로 널 사랑해” 같은 대답은 하지 않는다. 사랑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해도 사랑하는 동안에는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사랑은 달콤한 것이지만 사랑의 무게는 단맛이 아니라 쓴맛에서 나온다. 날개 치며 올라갈 때는 모른다. 그 사랑은 얼마나 무거운 것이고, 그 추락은 얼마나 무서울 것인 줄을.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보다는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이별의 징후와 이별의 과정, 이별의 이후를 통해서야 그 관계를 곱씹고 앓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어떤 사랑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은 ‘지금의 일’이기보다 이별로 완성되는 ‘과거의 일’인지 모른다. 거의 모든 사랑 영화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과, 사랑 노래 부지기수가 이별 노래나 다름없는 것이 그저 신파를 위한 작위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을 부모자식 간, 형제자매 간, 친구나 동료 간의 것으로, 사람과 동물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그 어떤 다른 대상과의 것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를 볼까. 주인공인 여자는 ‘5년 뒤’라는 자막으로 축약해버린 시간 동안 연인과 헤어진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둔 채로 나타나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이라는 낱말을 부여하는 사이는 이별한 남자와의 관계뿐이다. 관객은 “이별한 남자와의 사랑도 사랑이고, 결혼한 남자와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남편과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이제는 전 남자친구가 돼버린 남자와 멀리서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이 각자 말없이 지난 시간을 회상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완결된다. 판타지처럼 전개되던 러브스토리가 그저 달달하게 끝났다면 예쁜 사랑 영화는 됐겠지만 아름다운 사랑 영화로 기억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글 제목으로 가져온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의 책 제목에서 ‘그건’과 ‘사랑이었네’ 사이에는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는 없는 ‘지나고 보니’ 혹은 ‘돌이켜 보니’가 숨어 있다. 사랑은 이렇게 지나고 보니 비로소 무게를 알게 되는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사랑은 대체로 회한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 뉘우치고 탄식하고 상황과 자신을 원망하면서 사랑은 깊어지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던 과거의 일이 된다. 어떤 사랑은 이별 후에 ‘우리가 왜 이별했을까’라고 자문하고 ‘나는 왜 당신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같은 후회와 깨달음을 반복하게 한다. 각본이라도 있는 양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은 거의 반드시 하게 되는 생각이다.

그런 사랑은 이별 뒤의 존재감이 더 크다. 기둥이 클수록 빠져나간 구멍이 크듯이. 올해 초 어느 주말 동네 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던 친구는 자신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하다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대강 이렇다. “그 사람과의 추억은 나에게 거대한 성채 같아서 그 커다란 그림자가 작은 골방 같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짙게 드리워 있는 것만 같아.” 문학적이기도 한 이 설명이 꽤 인상적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닦는 그의 뒤로는 누군가가 거인처럼 서 있는 듯했다. 아름다운 사랑이어도 끝나버린 뒤에는 놓아주지 못하면 악몽이 된다.

회한이 짙을수록 우리는 집착하고 빠져든다. 그럴수록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발버둥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 마음은 벗어나려 할수록 끌려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곁에 있을 때 잘하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이 때문에라도 ‘만시지탄’이라는 말은 영원할 것이다.

강창욱 산업부 기자 kcw@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