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치킨 로드 기사의 사진
닭은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가축이다. 닭고기는 돼지고기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이 먹는 육류다. 또 해마다 전 세계에서 1억t의 닭고기와 1조개의 달걀이 소비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개와 고양이, 돼지, 암소를 합친 수보다 많다고 한다. 2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살고 있으며 이는 사람 수의 세 배에 달한다.

지난해 말 국내에 출간된 ‘치킨 로드’의 저자 앤드루 롤러는 전 세계를 누비며 닭의 과거 행적을 쫓았다. 그리고 주요 단백질 공급원 정도로 생각했던 닭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동남아시아 밀림에서 태어난 야생 닭이 왜, 중동을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횡단하게 되었는지, 그 위대한 여정을 종교, 인류학, 의학, 과학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눠 담았다. 현재는 너무 흔해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지만 닭은 역사적으로 사람에게 기쁨, 경외, 치유를 제공해 왔다고 강조한다.

이런 닭이 한국에선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쓰인다. 머리가 아둔한 이를 빗대 ‘닭대가리’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탄핵소추를 당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 앞 글자에 ‘닭’을 붙여 비난도 한다. 그러더니 한국의 닭들이 급기야 생사의 기로에까지 몰리게 됐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23일까지 1800만 마리에 육박하는 닭이 살처분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병한 일본에서 100만 마리 미만이 죽은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에서 닭들이 대량으로 죽어나가는 이유는 우선 무능한 정부 탓이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공백이 커져서인지 AI가 재난 수준으로 확산되는 동안에도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다. 2003년 AI가 처음 발생하고 14년이 흘렀는데도 정부에는 단계별 대응 로드맵조차 없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도 가세했다. 수익만 노려 좁은 공간에 닭들을 몰아넣고 키우다보니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닭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에 나라도 많은데 왜 한국에서 태어나 애꿎은 죽음을 당하나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사람 중에도 대통령 잘못 뽑아 애먼 가축까지 희생시키고 있다며 미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게다.

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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