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상목] 성육신 vs 탈육신 기사의 사진
매년 성탄절이면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교회에서 목격한 성탄예배 광경이다. 예배는 성찬식부터 시작했는데 한국교회와 달랐다. 집례자는 큼지막한 통밀빵을 전달했고 성도들은 이 빵을 조금씩 떼어내며 옆자리로 넘겼다. 포도주도 중세시대 왕과 귀족들이 사용하던 것처럼 커다란 은색 잔에 담겼다. 성도들은 이 잔에 입을 대며 조금씩 마셨고 돌렸다.

예수 탄생을 축하해야 할 성탄절 예배에 성찬식은 낯설었다. 하지만 이어진 목회자의 설교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설교는 ‘성육신(成肉身)’에 대한 내용이었다. 본문은 요한복음 1장 14절이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새번역)

설교는 성자 하나님이 죄악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으며 인간들 속에 살았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는 아기 예수 탄생 자체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설교자는 그날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본문을 여러 번 강조했다. “하나님이 인간이 돼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는 지금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날 예배당에는 100여명의 성도들이 앉아 있었다. 상당수가 백인이었지만 피부색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보였다. 이들은 모두 성찬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빠짐없이 말씀을 들었다. 성도들은 거룩한 일치감을 경험했다.

목회자의 축도는 짧고 단호했다. “여러분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최근 번역 출간된 ‘성육신적 교회’(새물결플러스)의 저자인 호주 몰링신학교 부총장 마이클 프로스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 프로스트는 이웃에게 들어가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협력하며 오랫동안 머물라고 제안했다. 예수의 성육신을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프로스트는 성육신(incarnation)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반대 개념인 ‘탈육신(excarnation)’에 대해 설명했다.

탈육신이란 ‘근육 제거’ ‘군더더기 살 제거’라는 의학용어다. 그는 이를 스크린과 스마트폰, 인터넷에 중독된 나머지 공동체에서 괴리되고 있는 사회현상에 적용했다. 사람들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피상적 세계에서 유랑하고 있는 것을 탈육신으로 설명했다.

이는 신앙생활과도 무관치 않다. 영혼과 내세만 중시하고 육체와 세상을 은연중 무시하는 이분법이 그렇고, 현지인들의 삶과 무관하게 ‘보물찾기’ 식으로 끝내버리는 일부 단기선교 행태가 그렇다. 예배시간 풍경은 어떤가. 설교를 들으며 문자를 확인하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집에 가서는 유명 목회자의 설교 팟캐스트를 내려받는다.

통계청은 지난 19일 한국 개신교 인구가 967만명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최대 종교로 등극했지만 승리감에 도취될 수는 없게 됐다. 인구 절반이 종교가 없다는 통계도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통렬한 책임감으로 영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 그 책임의 본보기는 이미 예수가 구현했다. 곧 성육신의 삶이다. 그는 사람들 속에 계셨고 고난당했으며 죽으시고 부활했다. 성육신의 길을 가는 것이 교회의 명예요, 자랑이어야 한다.

마이클 프로스트는 책의 서문에서 한국교회에 이런 말을 당부했다. “여러분의 몸속에는 선교적 유전자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열심을 내는 분들입니다. 또 한국교회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함을 베푸는 교회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전 세계 문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탈육신적 충동들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런 충동들은 여러분들을 이웃들과 분열시킵니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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